[전문가 포럼] 디지털 대전환기의 첨단산업이란?
“우리 아들이 컴퓨터공학 박사까지 했는데 마트에 취직한대! 첨단 기술을 공부했으면 반도체나 항공우주 같은 분야의 첨단 기업에서 일해야 하는 게 정상 아냐? 마트에서 그런 기술이 왜 필요해?”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최첨단 분야 박사까지 공부한 자녀가 첨단 기술기업에 취직할 줄 알았는데, 유통기업에 취직했다는 사실에 다소 실망한 듯한 부모의 하소연이었다.

최근 기업의 화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즉 ‘디지털 변혁’이다. 일반인들은 디지털 변혁을 단순히 오프라인 산업의 온라인 확장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더 큰 본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면 업(業)의 본질과 경쟁력이 바뀌는 것이다. 본업에 충실하자는 것은 업의 본질을 고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업의 본질은 바뀔 수 있고 이 본질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예를 들어 과거 대형마트 중심의 유통업은 일종의 부동산개발 산업과 본질이 비슷했다. 좋은 부지에 상권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자산 가치를 높이고, 이를 담보로 또 다른 사업을 전개하는 부동산 산업과 비슷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엔 불가능했던 신선제품의 당일배송도 가능한 세상이 됐다. 사물인터넷(IoT) 센서로 신선제품의 신선도를 관리하고, 첨단 수학적 모델로 제품을 최적으로 배송하는 방식을 산정하며, 인공지능(AI)의 기계학습 방식으로 어떤 고객이 어떤 상품을 원할지 예측해 재고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과거 첨단 제품을 생산할 때 사용했던 컴퓨터공학·산업공학 알고리즘이 직접 유통 운영에 활용되고 있다.

산업 전반에 이런 변혁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KAIST 학생이 창업한 정육점이 세간에 주목받고 있다. 육류 가공·배송을 첨단 기술을 활용해 효용을 높인 업체다. 미국 MIT 앞의 스파이스란 레스토랑은 MIT 학생들이 창업했다. AI 기술을 활용해 기존 레스토랑 운영을 혁신하며 성장 중이다. 본업에 충실하지만, 전통적인 본업의 가치가 디지털 기술로 변화된 것을 적극 수용한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기존 기업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본업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술을 통해 본업의 전체 프로세스와 조직을 어떻게 혁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과거 삽과 곡괭이를 활용한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토목공사를 하다가, 포클레인 같은 기계가 시장에 선보였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럼 포클레인을 구매하고, 포클레인 기사를 뽑기 전에 토목공사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 없이 포클레인에 투자하고 포클레인 기사만 고용한다면 생산성을 높이거나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이 선보이면 기존 프로세스, 조직, 인사 등 운영의 모든 면을 혁신해야 한다. 기술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줘야 기술을 통한 혁신이 가능해진다.

둘째, 전체 조직·인력의 변화와 역량 강화다. 업의 본질이 바뀌면 인력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유통업의 본질이 부동산 개발이었을 때는 부동산 관련 전문가 및 관련 기획부서가 핵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변혁 시대에 업의 본질이 디지털 기술로 변화하면 기업의 핵심 인재와 부서는 디지털 전문가와 팀으로 교체돼야 한다. 그리고 외주에 의존하던 IT 관련 업무를 기업 내 역량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기업 아마존은 초기부터 유통전문가보다 IT 전문인력을 영입해 업의 기업 본질을 IT 기술기업으로 포지셔닝했다. 또 기존 구성원들도 재교육해야 한다. 구성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는 임직원 복지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본업에 충실하면서 업의 본질이 바뀐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더 이상 첨단 제품을 만드는 것이 첨단산업은 아니다. 세상 모든 산업이 첨단산업이 될 수 있다. “기업이 망하는 이유는 기업이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피터 드러커의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