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경제 위기에 강한 한국' 다시 증명하려면
“세계에서 한국 기업들이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신흥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한국 예찬론’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한국을 경계하던 일본에서 두드러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국 기업이 강한 비결’을 3회 시리즈로 보도할 정도였다.

2009년 12월의 일이다.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년 넘게 힘겨워하던 때다. 한국 역시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처지였다.

모두가 움츠려 있었지만 한국 기업들은 달랐다. ‘위기가 기회’라며 대규모 투자를 했다. 때마침 한국 정부도 ‘비상경제체제’를 가동하며 민간 부문을 지원했다.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2010년 첫 스마트폰을 낸 뒤 1년 만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는 2009년 세계 양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도요타를 제쳤고, 영업이익률 기준으로 독일 BMW와 세계 1위를 다퉜다. 당시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대규모 리콜 사태로 주춤한 영향이 컸지만, 현대차 노조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무분규로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탠 덕도 적지 않았다.

국내 화학·정유업체 역시 승승장구했다. 자동차와 함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으로 불리며 2009년 900선을 맴돌던 코스피지수가 이듬해 2000선을 돌파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은 경제 위기 극복 우등생”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2010년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수차례 연설을 통해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짐 오닐 당시 골드만삭스 회장은 “신흥국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한국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다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니 더 심각하다. 금융부문에 한정됐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금융과 실물시장이 동시에 얼어붙는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은 10년 전과 달리 파죽지세로 성장해 한국을 넘어설 기세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 한국 등에 빼앗긴 실지를 무서운 속도로 회복 중이다.

주요 기업의 내부 사정도 복잡하다. 삼성은 ‘재판 리스크’에 노출돼 있고, 기아자동차와 르노삼성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은 노동조합의 파업 시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미증유의 비상경제 시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 등을 합친 32조원 규모의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며 “특단의 대책이 파격적 수준에서 추가로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문 대통령의 말처럼 특단의 지원책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4일 국내 10대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개 그룹(복수응답 포함)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경제정책으로 ‘규제완화’를 꼽았다. ‘친노동 정책 수정’(20%)이 다음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대규모 투자를 하고 싶어도 이런 장벽 때문에 섣불리 나서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기업 투자를 막고 있는 빗장을 풀어줄까. 이를 계기로 민·관이 힘을 모아 다시 한 번 위기에 강한 한국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까. 2008년 이후 12년 만에 청와대에서 열리는 ‘비상경제회의’(19일)가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