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로펌 승소율 56%
김앤장, 국내외 기업 대리 도맡아
율촌, 주요 조세소송 잇단 승소
지평은 주로 정부·지자체 대리
9일 한국경제신문이 대법원 판례공보를 통해 공개된 지난해 주요 행정소송 상고심 판결 122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 태평양, 지평, 광장, 바른, 율촌 등 국내 7대 주요 로펌의 정부 상대 승소율은 56.5%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리딩케이스(선례가 되는 주요 판례)’에 참여한 로펌은 김앤장, 승소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세종이었다. 율촌은 조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형 로펌 대부분이 노동 분야에선 성적표가 시원찮았다. ‘문재인 정부 대세’ 지평, 피고 대리 더 많아
판례공보는 법원도서관에서 2주마다 정기적으로 해당 기간에 선고된 주요 대법원 판례를 취합해 공개하는 공공기록물이다. 대법원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는 재판연구관들이 새로운 법리가 담겼거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인 경우 등 각 분야 리딩케이스들을 엄선한 자료다. 학계는 물론이고 실무를 담당하는 법조인에게도 중요한 참고자료다.
지난해 판례공보에 실린 행정소송 상고심 판례 가운데 7대 로펌이 원고나 피고 측을 대리해 참여한 사건은 총 49건으로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 그중 김앤장이 17건(원고 측 15건, 피고 측 2건)을 대리해 가장 많은 리딩케이스에 이름을 올렸다. 김앤장은 글로벌 반도체기업인 퀄컴을 비롯해 SK텔레콤, 현대HCN 등 대부분 기업 측 대리를 도맡았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공공기관 대리를 맡기도 했다. 이어 율촌(11건), 세종(8건), 지평(7건), 광장·태평양·바른(각 5건) 순으로 이름을 올렸다.
로펌업계에서 문재인 정부와 ‘코드’가 맞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평은 다른 로펌과 달리 개인과 기업 등 원고 측(3건)보다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피고 측(4건)을 대리한 사례가 더 많았다. 지평은 지난해 공정위와 교육부, 부산시 등을 대리해 모두 승소를 이끌어냈다.
7대 로펌 중 한 곳의 대표변호사는 “정부 측 대리는 각 기관 규정상 변호사 수임료 제한이 있어 사건을 맡아도 수익 측면에서는 큰 이익을 보지 못한다”면서도 “그러나 정부를 대리하며 쌓은 네트워크와 전문성 등이 추후 민간 영역의 수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 또는 개인을 대리해 정부를 상대로 승소한 비율은 세종(80%)이 가장 높았다. 세종은 지난해 7월 병역기피 의혹으로 국내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가수 유승준 씨를 대리해 미국 주재 LA총영사관과의 소송에서 이기는 등 원고 대리 5건 중 4건에서 승소했다. 김앤장은 15건 중 7건(46.7%)에서 승소해 오히려 승소율은 7대 로펌 중 가장 낮았다. 로펌업계에서는 김앤장에 승소가 어려운 사건이 몰리는 영향이 반영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앤장 꺾은 민주노총 법률원
대형 로펌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행정소송 중에서도 조세다. 국내 세법은 물론 각종 국제 조약에도 정통해야 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는 분야 중 하나여서다. 지난해 율촌은 조세 리딩케이스 5건에서 승소를 이끌어내 전체 로펌 중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율촌은 지난해 3월 일본 프로축구리그에서 활동한 조영철 선수가 일본에서 받은 연봉에 종합소득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한·일 조세조약에서 정한 거주자 판정 기준을 해석하는 문제 등에서 새로운 판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그밖에 김앤장 3건, 광장 2건, 세종·바른·지평이 1건씩 조세 리딩케이스 승소 판례에 이름을 올렸다. 광장은 지난해 5월 재향군인회를 대리해 세금을 체납한 특정 법인의 과점주주를 새 납세의무자로 정하는 ‘2차 납세의무’ 제도는 해당 법인의 과점주주에게만 적용할 수 있고, 과점주주의 과점주주에까지 2차 납세의무를 확대 적용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동안 과세당국이 2차 납세의무를 단계적으로 확대해온 과세 실무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반면 대형 로펌이 유난히 고전한 분야는 노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판례공보 중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근로자 차별 등 16건의 노동 관련 리딩케이스 중 7대 로펌은 5건(김앤장 3건, 율촌 2건)에만 이름을 올렸다. 5건 중 승소는 단 한 건도 없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의 친노동 성향이 강해지는 분위기”라며 “주로 기업을 대리하는 대형 로펌이 실적을 내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율촌은 지난해 9월 강원랜드가 중노위를 상대로 “계약직 딜러들에게도 호텔 봉사료를 차별 없이 지급하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강원랜드를 대리했으나 패소했다. 지난해 10월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인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가 노조와의 단체교섭에서 금속노조를 배제하자 중노위가 노조법 위반이라고 결정한 데 대해 김앤장이 사측을 대리해 소송을 냈지만 졌다. 김앤장에 맞서 승소를 이끌어낸 곳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법률원인 ‘여는’이다. 여는은 지난해 6월 현대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인 이른바 ‘카마스터’도 노조를 결성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