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한국당 자리 문희상 국회의장이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을 뺀 범(汎)여권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한쪽 좌석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텅 빈 한국당 자리 문희상 국회의장이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을 뺀 범(汎)여권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한쪽 좌석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된 지 8개월 만에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초헌법적인 ‘무소불위의 옥상옥’이란 비판이 거셌지만, 자유한국당을 배제한 채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정당이 공조하면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청 “권력 견제·사법 불신 해소 전환점”

공수처법은 30일 국회 본회의가 열린 뒤 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에 부쳐졌다. 재적 의원 177명 중 찬성 160명, 반대 14명으로 가결됐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공직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반부패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의 사법 불신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전담해 수사하는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대법관,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무직 공무원,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이다. 이 가운데 검사,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과 그 가족에 대해선 공수처가 직접 수사해 기소하고 공소 유지도 한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공수처 법안 통과 직후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며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함에 차질이 없도록 문재인 정부는 모든 노력과 정성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철옹성처럼 유지된 검찰의 기소독점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 것”이라며 “되돌릴 수 없는 검찰개혁의 제도화가 차례차례 이뤄지고 있기에 눈물이 핑 돈다. 오늘 하루는 기쁠 수 있겠다”고 썼다.

한국당 “여당의 폭거…죄악 중 죄악”

한국당은 이날 본회의 표결 직후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직 총사퇴를 포함한 초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한국당 관계자는 “의원들이 사퇴서에 서명한 뒤 심재철 원내대표에게 사퇴 여부를 일임키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내기로 했다. 헌법이 아니라 하위 법률에 근거한 공수처장이 검찰총장 위에서 사건을 지휘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심 원내대표는 법안 가결 직후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문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범죄를 ‘암장’하겠다는 여권의 폭거는 죄악 중 죄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도 위헌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가 정부조직법상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데다 수사 대상이 헌법이 규정한 수사기관이 아니라 공수처에서 수사를 받아야 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도 “정부 구성 원리에 반하는, 위헌성이 짙은 법”이라고 했다.

패스트트랙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패스트트랙은 특정 정당의 반대로 필요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상임위원회 심의(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 자구 심사(90일), 본회의 부의(60일) 등 최장 330일의 숙려 기간을 거치면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최선의 법안을 도출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을 보면 여야는 상임위원회 논의 단계에선 패스트트랙 일방 지정으로 인한 국회 파행을 겪었다. 표결이 다가오면 급히 협상해 수정안을 만드는 식의 꼼수도 나왔다.

검찰, 침묵 속 반발 기류

검찰은 공수처 법안의 국회 통과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대검찰청은 법안이 통과된 지 10분 만에 대변인실을 통해 “공수처법 통과와 관련한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내부에서는 막판에 추가된 ‘독소조항’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부 검사는 공수처를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보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지방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급하게 진행돼야 할 수사가 지연되거나, 다시 검찰이 수사하도록 돌아오면 그 사이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어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 권한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공수처가 오히려 권력에 대한 감시·견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검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기 때문에 권력을 견제하고 넘어서기는 힘들 것”이라며 “권력의 편에 서서 수사 대상인 경찰이나 검찰을 복종시키는 도구로 쓰일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미현/김우섭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