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시행 앞두고 채용제도 변경하면서 '전문대 졸업 이상'으로
주변인들 "평생 노래만 하고 살던 분…차선책 찾을 시간 줬어야"
'강사 해촉' 전통예술인의 죽음…막을 길은 없었을까
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 김정희씨는 올해 1학기까지 20여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통예술원에 출강했다.

하지만 '강사법'으로 통칭되는 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한예종의 강사 임용 기준이 바뀌었고, 대학 학위가 없던 그는 새 제도에 따른 강사 채용에는 지원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지난 13일 그는 실의에 차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 강사법 시행 맞춰 제도 바뀌어
21일 한예종과 김씨의 주변인 등에 따르면 한예종은 기존 '시간강사에 관한 규정'과 '강의전담교수 임용규정'을 폐지하고 그 대신 '강사 임용 규정'과 '강사 임용에 관한 심사지침'을 신규로 제정해 올해 5월 31일 공포했다.

이에 따라 한예종의 강사 채용 방식은 '위촉'이 아니라 '공개채용'으로 바뀌게 됐다.

한예종은 강사법이 시행되는 8월 1일에 맞춰 새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공채 공고를 6월 11일에 냈다.

당시 공고상 모든 지원자는 전문대졸 이상이어야 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 바로 전 단계인 '전수조교'였던 김씨는 기존 제도에 따라 시간강사로 위촉돼 20여년간 출강했지만, 대학 학위가 없었기 때문에 새 제도에 따른 6월 공채에는 지원할 자격이 안 됐다.

한예종은 8월에 일부 분야의 추가 채용을 위해 재공고를 낼 때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서 교육 및 연구경력이 10년 이상인 사람'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김씨가 맡았던 과목은 추가 채용이 없었다.

석사학위를 보유한 다른 강사가 6월 공채에서 이미 뽑혔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한예종에 출강하지 못하게 됐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 교육부와 한예종의 해명
강사법 시행에 맞춰 한예종이 강사 임용 제도를 바꾼 것이 김씨의 실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김씨의 죽음이 '강사법의 부작용'이라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왔다.

하지만 교육부와 한예종은 '법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한예종은 '각종학교'로서 유연한 교원 임용이 법적으로 보장된 상태"라며 "강사법 시행으로 학위가 없는 관련 분야 전문가를 임용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예종의 해명은 이와는 초점이 조금 달랐다.

한예종은 "국립학교인 만큼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채용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며 8월 채용 기준이 일부 변경된 것에는 "예술실기 전문학교 특성상 현장 전문가의 필요성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입장이 약간 엇갈리긴 하지만, 교육부와 한예종은 김씨가 면직된 데 대해 "새로운 규정을 현장에 적용하다 생긴 결과일 뿐,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지인들 "제도 운용에 유연성이 부족했다"
김씨와 친분이 있던 이들은 제도 운용에 유연성이 부족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김씨의 한 지인은 "고인은 평생 노래만 하고 살던 분"이라며 "학교 입장도 이해하지만 차선책을 찾도록 사전에 고지해야 했던 것 아니냐. 제도가 전통예술 분야에 유연성 있게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채용기준에 '전문대졸 이상'이라는 요건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생전 김씨와 가까웠던 한예종 교수조차 김씨가 대학 학위가 없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김진 공공운수노조 예술강사지부장은 "평생 예술에 몸을 바치고 후학 양성에 매진하던 분인데 좌절감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김씨와 같은 명인들이 학력을 이유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민족춤협회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 "김정희 명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며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를 휘두르는 자들이 이번 사태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라고 규탄했다.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고자 만들어진 강사법은 대학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1년 이상의 임용 기간과 최소 3년간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강사법은 2011년 국회를 통과한 뒤 올해 8월까지 7년 이상 시행이 유예됐다.

그 과정에서 대학이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강사들을 사전에 대거 해고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