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이슈 프리즘] '82년생 김지영'이 던진 메시지
“우리 집과는 180도 달라. 180도.” 요즘 화제작인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온 한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아내는 받아쳤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거지.” 그래도 뭔가 손해를 본 듯 한마디 덧붙인다. “그 덕분에 당신도 원하는 것 하면서 살았잖아.”

1970년생 아내가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82년생 김지영’보다 의지가 강했고 여건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 후에도 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해 주는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 3년째 아이를 갖기로 했다. 시부모님이 봐주신다고 했다. 절대다수가 남성인 회사에서 일도, 회식도 동료들과 똑같이 하려고 했다. 얼마간의 불편함과 부당함은 감수했다. 간혹 여성이란 희소성이 ‘장점’이 되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보육

‘82년생 김지영’은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지만 출산과 함께 회사를 그만둔다. 그러던 어느 날 때때로 다른 사람으로 ‘빙의’되는 병에 걸린다. 삼촌들 공부시키느라 교사의 꿈을 접고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친정엄마 등으로 변해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쏟아낸다. 직장 내 성차별, 시댁 관계, 경력단절 등이 쌓여 우울증이 됐음을 암시하면서.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다. ‘페미니스트 영화’라며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는 보지 않으면서 표를 구매해 흥행을 돕는 ‘영혼 보내기’도 등장했다. 영화를 본 뒤 크게 공감했다는 이들도 있고, 공유(극 중 정대현) 같은 남편이 있고 중산층으로 사는데 왜 아픈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직접 영화를 본 느낌. 각각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음 직한 일인데, 이를 김지영이라는 한 인물에 투영하다보니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었는데 아직 사회 인식이나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를 이슈화했다는 점에선 ‘공감’ 여부를 떠나 ‘생각’해 볼 것들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우선 보육 문제. 지영이 일을 그만둔 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현실도 비슷하다. ‘2018 여성 고용통계’에 따르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90.2%다. 취업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육아 부담(47.9%). 집안 어르신들의 도움이 없으면 대부분 ‘이모님’(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긴다. 이마저 여의치 않을 땐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길을 걷게 된다.

남녀 대립 이슈 아니다

또 하나 직장 내 성차별 문제. 지영이 다니던 홍보대행사는 기획팀을 꾸리는 데 모두 남성만 뽑는다. 지영의 능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라는 게 팀장의 설명이다. 올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남녀 임금 격차는 37%에 달한다. 고용률도 20%포인트 차이 난다.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보육 인프라 확충은 정부가 가장 힘써야 할 저출산 대책이다. 돈을 나눠준다고 아이를 낳진 않는다. 워킹맘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 여성 임원은 회사가 기회를 주며 키워야 한다. 일은 경험하면서 배우고, 이 과정에서 리더십도 길러진다. 젠더 이슈는 남녀 대결이 아니라 ‘자유 선택’과 ‘다양성’의 문제다. 성별에 상관없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나가는 것,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또 다른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