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받아 잔금납부' 막혀…"전셋값 불안 요인"
◆‘신축 전세’ 끊기나
지난 26일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 입주자에게 최대 5년의 거주의무기간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구체적인 기간은 ‘주택법 시행령’을 통해 주변 시세와의 차이에 따라 정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2~3년 안팎의 거주의무기간을 두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할 계획이다.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선 이 기간이 3~5년이기 때문에 민간택지의 경우 이보다 짧게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거주의무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현행 ‘공공주택 특별법’과 이 법의 시행령은 최초 입주가능일부터 90일 이내 입주한 뒤 거주의무기간을 채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파트 준공 직후부터 입주해 의무기간을 충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이 같은 규정을 준용해 적용한다면 상한제를 적용받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신축 아파트 전세는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 아파트 수분양자들은 통상 분양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내고 60%를 중도금으로 납부한다. 입주할 때 나머지 30%의 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경우 전세 세입자를 받아 잔금을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상한제와 거주의무가 맞물려 시행될 경우 이처럼 입주를 미루는 전략은 완전히 막힌다. 최장 10년 동안 전매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금이 넉넉하지 않다면 분양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전세가격 불안을 우려한다. 신축 아파트 준공은 민간 임대차시장의 주요 공급원인데 앞으로는 시장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커져서다. 상한제 영향으로 전체 주택공급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공공과 민간의 거주의무기간 규정이 유사하게 마련된 점을 고려하면 기간 기산에 대한 조항도 그대로 준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입주단지에서 한동안 전월세 매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전세시장이 단기적으로 크게 요동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편법 등장할 것”
신축 아파트 전세는 이미 지난해 ‘9·13 대책’ 영향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에 2년 거주 요건이 추가돼서다. 이전엔 1주택자가 집을 팔 때 직접 거주하지 않았더라도 매매가격 9억원 초과분에 대해 장특공제율을 최대 80%(10년)까지 적용했다. 하지만 내년 1월 1일 이후 양도분부터는 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장특공제율이 최대 30%(15년)으로 줄어든다. 올해 강동구 일대 재건축 단지 대규모 입주와 연초 1만 가구 규모의 ‘헬리오시티’ 입주 때도 전셋값 하락이 예상보다 오래 가지 않은 이유다. 가락동 A공인 관계자는 “전세를 돌리느니 향후 양도소득세를 아끼기 위해 차라리 입주하겠다는 집주인이 많았다”며 “전세 물량이 당초 예상보다 1000가구 가까이 적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거주의무기간 때문에 세입자를 들일 수도 없고 입주할 돈도 마땅치 않은 수분양자들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집을 되파는 게 유일한 방안이다. LH는 이렇게 전매제한 예외로 매입한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거나 수급 조절용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2005년 이 같은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 14년 동안 LH가 우선 매입한 주택은 단 한 채도 없다. 이마저도 수분양자의 해외 체류나 근무·취학·결혼 등의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매각이 가능하다. 한 현직 공인중개사는 “아파트 당첨 못지않게 자금계획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돈이 부족한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싸게 받는 대신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전세계약을 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