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통합러시아당)이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에서 기존 의석의 3분의 1을 빼앗겼다. 지난 7월 이후 부정선거 의혹으로 두 달 가까이 이어진 반(反)정부 시위가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수년간의 경기 침체와 연금 개혁 반대 여론 등도 영향을 미친 만큼 장기 집권 중인 푸틴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9일 러시아 RIA통신에 따르면 통합러시아당은 지난 8일 모스크바 시의회선거에서 26석을 차지해 종전(38석)보다 31.5% 줄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무소속 의원 10명을 합해 38명이 푸틴 대통령의 우군이었다. 이번엔 푸틴 지지세력인 무소속 의원이 모조리 낙선했다. 통합러시아당이 전체 모스크바 시의회 의석 45석 중 과반인 26석을 차지했지만 패배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야당인 러시아공산당은 기존 5석에서 13석으로 두 배 이상으로 의석이 늘었다. 나머지 6개 의석도 반정부 성향의 야당인 야블로코당과 공정한러시아당이 3석씩 얻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러시아 전국 85개 주 가운데 16개 주의 주 정부 수장과 13개 주의 지역의회 의원을 선출했다. 이 중 수도인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는 러시아 민심을 읽을 수 있는 정치적 풍향계로 여겨졌다.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푸틴 대통령 측근인 알렉산드르 베글로프 주지사대행이 뽑혔다.

모스크바에선 지난 7월 말부터 두 달 가까이 공정 선거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지방선거의 후보 등록 과정에서 러시아 선거당국이 야당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30여 명의 야당 후보를 서류 미흡 등을 문제 삼아 실격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7월 27일 모스크바 시내에선 8년 만에 최대 인원인 2만2000여 명이 모여 부정선거에 반발했다. 시위는 푸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푸틴 시위로 확산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면서 지지층 결집을 호소해 왔다.

푸틴, 러 지방선거서 '타격'…부정선거·경기침체에 민심 등 돌렸다
지방선거 패배로 푸틴 대통령의 공고한 지지도에도 금이 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국영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2014년 70%에서 올해 30%대로 떨어졌다.

러시아 경제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근처에 있었던 2000년대 후반에 5%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반토막 이상 하락하자 최근 1.6%(2017년), 2.3%(2018년)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올해는 1.2%로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금개혁안에 대한 반발도 컸다. 푸틴 정부는 작년 10월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0세로 단계적으로 정년을 늘리는 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지속된 경제난 역시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 등 외신들은 “이번 지방선거는 2021년 총선뿐 아니라 2024년 임기가 끝나는 푸틴 대통령의 퇴임 이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뒤, 4년간은 총리를 지냈다. 이때 대통령이 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다. 푸틴 대통령은 전대미문의 대통령·총리 나눠먹기로 영구집권을 노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총리로 물러난 것은 헌법에서 대통령 3연임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그는 2012년부터 다시 대통령을 맡았으며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