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을 잡힌 느낌입니다.”(국내 디스플레이업체 고위 임원)

"소재 없으면 진짜 답 없다" 반·디 재고확보 총력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생산에 필요한 거의 모든 핵심 소재·장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업체들은 지난달부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소재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규제가 장기화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체들은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소재 투입량 최적화, 추가 재고 확보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2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으로 수출 규제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1120개 전략 물자 중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부품, 장비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연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금액 1000만달러 이상’ ‘일본 수입 비중 50% 이상’인 핵심 품목은 37개다.

반도체 제조용 에폭시수지(87.4%), 평판디스플레이용 블랭크마스크(빛으로 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의 원재료·83.5%), 실리콘웨이퍼(회로를 그려 반도체를 제작하는 규소판·52.8%) 등이 대표적이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유기물 증착 장비, 플렉시블 OLED 패널 생산에 필수적인 파인메탈마스크(FMM) 등도 일본 업체에 90% 이상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지난달부터 핵심 소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중순 TV·스마트폰 관련 협력사에 ‘일본산(産) 소재 3개월치 확보’를 주문했다.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등도 핵심 소재 석 달치 재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장비보다 시급한 건 원재료 역할을 하는 소재 확보”라며 “일부 일본 소재 협력사는 주문이 밀려 납품이 어려울 정도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사태는 ‘수출 규제 장기화’다. 버티기용 재고가 바닥 난 상태에서 일본 정부가 ‘수출 불가’ 판정을 내리면 업체들은 수율(정상제품 비율) 하락을 감수하고라도 대체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일각에서 거론하는 ‘소재 국산화’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단기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콕 집어 규제할지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기업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업체에 연락해 구체적인 규제 내용을 파악해보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주문을 넣었을 때 ‘수출 불가’란 반응이 오기 전까지는 ‘깜깜이’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