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는 운용하기에 따라 한국에 타격이 제로(0)가 될수도 있고 매우 클 수도 있는 폭이 매우 넓은 조치다. 어렵지않게 사실상 철회할 수 있는 카드다. 일본의 목소리를 ‘경고’가 아니라 ‘호소’로 들을 필요가 있다”

오쿠조노 히데키(奧薗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3대 소재의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등 강경자세를 취한 것은 “징용 피해자 판결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지속됐던 한일 관계의 근본 틀에 균열이 간 만큼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쿠조노 교수는 일본내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다.

오쿠조노 교수는 “일본이 여러가지 이유를 대고 있지만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근본이유가 징용피해자 재판이라는 것은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잘 알고 있다”며 “징용피해자 판결 문제가 해결돼야 양국간 경색국면도 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는 줄곧 한국 대법원 판결로 일본기업의 피해가 현실화되면 이를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한국내 압류자산에 대한 현금화 작업을 일단 멈추고 숨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압류자산의 현금화를 멈추는 것이 일본정부가 요구하는 ‘마지노선’이며 일단 현금화 조치가 취해지고 나면 아베 총리로선 물러설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본은 일본기업에 피해가 현실화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전 ‘한국기업의 피해가 현실화되면 어쩔 수 없이 대응조치 취하겠다’는 발언은 아베 총리의 입장과 거울을 보듯 똑같은 얘기라고 지적했다.

오쿠조노 교수는 한일 양국 정권의 ‘불통’이 최근의 사태악화를 심화했다고 진단했다. 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심각성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일본이 느끼는 심각성을 전혀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일본 정부가 요구했던 대책마련 요구는 물론 중재위 구성,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등 단계적 요구에 모두 ‘검토 중’이라고만 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상대방의 논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사태가 악화됐다고 일침을 놨다.

이어 오쿠조노 교수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에 대한 경고로 볼수도 있지만 바꿔말하면 마지막으로 하는 간절한 부탁의 의미도 있다”며 “일본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위기감을 전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오쿠조노 교수는 일본이 납득할 수 있는 징용 판결 후속조치를 한국이 빨리 마련해야한다고 주문했다. 한국 정부가 3권 분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3권 분립을 핑계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외교를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방식으로는 최근 거론되는 ‘2+1(한국 정부 및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재단 구성)안’의 경우 일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라고 봤다. 다만 일본 정부로선 ‘납득도 못하고, 만족도 못하지만 민간 기업(일본 기업)이 자체적으로 배상 참여를 결정한 것’으로 평가하며, ‘2+1안‘을 사실상 묵인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시각이다. 양보와 타협의 여지가 없지는 않은 구상이라는 평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2+1안’도 타협을 보기까지 허들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2+0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는 한국정부와 한국기업으로 한국측이 재단을 만들고 ‘0’은 일본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를 지칭한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이 책임지며 개입하지 않게돼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사실상 운영은 일본 기업이 참여해 2+1의 형태를 띄지만 법적으로는 일본 기업이 책임을 지지 않아 한국 국내법과 한일청구권 조약의 국제법간 충돌도 피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마지막으로 오쿠조노 교수는 “한국 정부는 현재 한일 마찰을 이념의 문제로 보는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한일 관계가 과도한 민족감정 대결로 번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