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스포츠 혁신을 떠받치는 두 기둥
국가대표 코치를 맡으면서 폭력을 휘둘러 구속 재판 중인 체육인의 추행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현역 시절 국제대회 금메달을 휩쓸던 체육인의 지저분한 사생활도 가관이다. 체육계 자정을 위한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새로 출범했지만 해묵은 부조리를 발본색원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는 필자는 40대 후반에 체육위원장을 겸임하며 특기생 지도를 맡았다. 과제와 시험이 엄격한 회계학은 초반 탈락자가 많다. 300명 수강생 중 170명에게 F학점을 준 학기도 있었다. 좋은 학점으로 통과한 학생 대부분은 제자리를 잡았고 4대 회계법인 대표가 된 제자도 있다.

그러나 체육특기생의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거액 연봉을 받는 프로선수도 있지만 변변한 직업 없이 고생하는 제자도 많다. 대학 체육특기생은 중·고교 시절 해당 종목에서 이름을 날리던 스타였다. 그때의 박수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심한 좌절에 부딪힌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중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생긴다. 이들이 명예를 지키며 성실한 삶을 영위하도록 이끌기는 쉽지 않다.

한번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로부터 결혼 주례를 부탁하는 전화를 받았다. 만나서 저간의 사정을 듣고 깜짝 놀랐다. 경기도에서 육류가공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부친이 갑자기 별세했고 상심한 모친에게 급성 간질환이 발병해 자신의 간을 절반 넘게 이식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운동을 중단하니 몸무게가 엄청 불어 정상이 아닌데, 회복하면 부친이 남긴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신부는 한국무용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운동을 그만둔 신랑과의 결혼을 집안에서 반대할 것을 우려해 서두르는 눈치였다.

결혼식 날은 몹시 추웠다. 신랑 모친은 초췌한 몸으로 필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누나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독자인 친정 장손의 망가진 몸 상태에 대한 불만으로 고모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동료 선수도 모두 울상이었다. 신부 부모와 무용 친구들의 표정 역시 우울했다. 덕담 중심으로 준비했던 주례사를 모두 버리고 분위기 반전을 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체육인과 무용인 부부가 함께 붙들고 지켜야 할 S로 시작하는 세 가지를 제시했는데, 첫째는 스틱(stick)이었다. 스틱은 아이스하키 선수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껴안고 지켜온 자존심이다. 골을 손발로 밀어 넣으면 안 되고 반드시 스틱으로 쳐 넣어야 한다. 피땀으로 훈련하던 어린 시절을 존중하고 서로의 자존심을 붙들고 지켜주는 부부가 될 것을 당부했다. 훈련의 무서움을 아는 신랑 친구들이 조용히 경청했다.

둘째는 스테이지(stage)였다. 무대는 체육인과 무용인에겐 존재의 기반이다. 환호와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참혹한 냉대와 야유도 쏟아진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인생은 무대로, 인간은 배우로 비유된다. 왕비의 죽음을 맞은 맥베스왕은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지만 곧 잊히는 처량한 배우일 뿐”이라며 한탄한다. 서로의 무대를 붙들고 지켜주는 부부가 될 것을 당부했다. 무대의 무서움을 아는 신부 친구들이 숙연했다.

셋째로 스팀(steam)을 들었다. 서로를 격려하며 동력을 불어넣고 온기를 나누는 부부가 될 것을 당부했다. 신랑 부친이 필자와 함께 체코 프라하 빙상장 숙소에서 소고기를 다듬어 선수들을 먹인 일화도 공개했다. 신랑 부친이 신부를 정말 좋아했는데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샘(패트릭 스웨이지)이 몰리(데미 무어)를 지키듯 하늘에서 지켜줄 것이라고 축원했다. 앞 테이블의 신랑 고모들도 울먹였다.

홈스쿨링으로 손흥민을 키운 부친은 선수 출신이다. 같은 영문 성씨 ‘Son’을 쓰는 손기정과 손흥민을 대비시킨 다산칼럼(2014년 9월 1일자)에서 필자는 손 선수 부친에 대한 축구선수들의 평판을 ‘무섭지만 부러운 신화 같은 아버지’로 소개했다. 2015년 6월 2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장외홈런을 날린 이승엽 선수는 고개를 숙인 채 1루로 향했다. 나중에 이유를 묻자 어린 투수의 기가 죽지 않을까 걱정돼서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도자의 사랑·열정과 선수의 배려·겸손은 스포츠 혁신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