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 ‘블리블리’
임지현 ‘블리블리’
천연성분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의 ‘불가리안 로즈 세럼 플러스’는 출시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지난해 올리브영에서 수많은 에센스·세럼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83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쇼핑몰 운영자 임지현 씨가 선보인 화장품 브랜드 블리블리는 판매가 급증하며 백화점 입점에 성공했다. 지피클럽은 작년 중국에서만 ‘꿀광 마스크’를 3억3000만 장 판매하며 단숨에 매출 5000억원대 기업으로 올라섰다.

아이소이, 블리블리, 지피클럽은 화장품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소 브랜드·천연성분·인플루언서가 키워드다. 차별화된 기획력을 갖춘 중소업체가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화장품 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대기업의 지명도로 승부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발칙한 기획력·착한 성분·인플루언서의 입'…화장품 판을 흔든다
‘중소 브랜드’의 활약

제이준, 타임코스메틱, 이데베논 등은 GS홈쇼핑에서 최근 3개월간 1만 개 이상 팔린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중소 브랜드다. 중소 화장품 업체가 약진을 거듭하며 올리브영 등 H&B(헬스&뷰티) 매장을 넘어 면세점, 백화점 등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화장품업계에 새로운 스타 중소 브랜드가 등장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급속한 증가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제조·판매업체는 지난해 1만3000개를 넘어섰다. 2013년 3884개에서 2017년 1만 개(1만79개)를 돌파한 뒤에도 계속 늘고 있다. 식약처에 등록된 화장품 제조·판매업체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이들이 과감히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주는 인프라도 있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지닌 전문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다. 이들 덕에 중소 업체는 제조시설이 없어도 ‘기획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게 됐다. 시장도 있다. ‘K뷰티’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등에도 수요가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액은 47억5800달러로 2017년에 비해 27.7% 늘었다. 전체 화장품 수출액(62억7800만달러) 중 75.7%를 차지했다.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중국 시장에서 K뷰티 수요가 되살아나고 미국 러시아 태국 등으로도 수출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착한 성분 체크슈머 바람

화장품 시장의 또 다른 트렌드는 성분 체크다. 화장품 뒷면에 적힌 성분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착한 성분 체크슈머’가 늘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는 주의성분을 알려주는 앱(응용프로그램) ‘화해’가 크게 기여했다. 제품명을 입력하면 함유 성분을 보여준다. 화해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680만 건에 달한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세계 화장품 소비자 중 한국 소비자가 가장 까다롭게 성분을 따지며 구매한다”며 “ODM 업체에 ‘화해에 주의성분으로 표시될 만한 원료는 무조건 빼고 제조해달라’고 주문하는 회사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체크슈머들이 스테디셀러도 만들어냈다. 천연화장품 선두주자 아이소이의 ‘불가리안 로즈 세럼’은 지난해 4분기(10~12월) 올리브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 늘었다. 출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두터운 팬층이 지속적으로 제품을 구매한 덕이다. 천연성분으로 고기능성 화장품을 생산하는 브랜드 마녀공장도 작년 4분기 올리브영 매출이 2017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배 늘었다. 식물성 오일을 쓴 ‘퓨어 클렌징오일’ 등이 인기다. 국내 마스크팩 1위 업체인 엘앤피코스메틱은 마녀공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판단해 지분 70%를 인수하기도 했다. 단일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 아임프롬 등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과거에는 사용 후기 등 입소문을 타고 히트 상품이 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착한 성분을 앞세운 브랜드의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뷰티 인플루언서 전성시대

빅데이터 분석업체 타파트렌드가 2017년 1월~2018년 10월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게시된 화장품 관련 약 406만 개의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1위 키워드는 ‘인플루언서’(12만5340건)였다. 타파트렌드 측은 “인플루언서가 특정 화장품을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소비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뷰티 인플루언서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화장품을 소개하는 1인 미디어다. 이들은 최근 화장품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이사배, 씬님 등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와 협력해 제품을 알리는 데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플루언서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시킨 사례도 나왔다. 쇼핑몰 임블리를 운영하는 임지현 씨가 선보인 브랜드 블리블리의 지난해 4분기 올리브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배나 급증했다. 팔로어 37만 명인 김수미 씨는 브랜드 유이라를 선보였다. 유이라의 ‘씨더매직 톤업크림’은 지난해 11월 올리브영에 입점하자마자 모든 매장에서 품절돼 전 카테고리 매출 1위를 차지했다.

GS리테일의 H&B스토어 랄라블라 관계자는 “영향력이 큰 이들이 선보이는 화장품에 관심이 급격히 쏠리고 있다”며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력도 갖춰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