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회계감사 대란이 온다
‘회계감사 대란’의 파고가 몰려오고 있다. 올 3월 상장사들의 감사보고서 제출 시즌을 앞두고 감사현장 곳곳에서 기업과 외부감사인(회계법인) 간 파열음이 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판정’ 파장에 감사인의 권한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외부감사법 전부개정법률안, 이른바 신(新)외감법 시행이 겹치면서다.

'삼바 파장'에 외감법 개정까지

파고는 쓰나미급이 될 전망이다. 회계법인들이 기업 감사보고서에 전례 없이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비적정’ 감사 의견을 받는 상장사가 속출해 사상 최대의 퇴출 대란이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회계법인의 감사 의견 중 비적정 의견은 한정 또는 부적정, 의견거절을 의미한다. 부적정과 의견거절은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한정 의견을 받아도 주가 급락은 피하기 어렵다.

회계 대란의 중심엔 2011년 전면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정부는 세계 바닥권인 한국 회계의 국제 신인도를 높인다는 명분 아래 IFRS 도입을 강행했다. 국내 상장기업들과 회계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했고, 도입 효과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기존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은 장부의 계정과목별 처리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한 기준을 제시하는 규정 중심의 회계 메커니즘이다. 이에 비해 IFRS는 기업이 개별 사안을 경제적 실질에 맞게 회계 처리할 수 있도록 기본 원칙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기업이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는 ‘원칙주의 회계기준’이다. K-GAAP는 규정한 것 외의 행위를 금지하는 반면 IFRS는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IFRS 환경에선 그만큼 판단 기준이 불명확한 ‘회색지대’가 많다. 판단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정확한 유권해석을 해 주는 기관도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 당초 판단을 뒤집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회계 처리를 분식으로 낙인찍어 검찰에 고발하면서 IFRS의 근간을 흔들었다. 회계업계는 제2, 제3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나올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합작회사 회계처리를 한 회사들은 모두 기존 재무보고서를 수정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신외감법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감사 시간을 늘리고 부실감사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기업들에 회계법인의 칼바람이 예고됐다.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존에는 자산처리했던 회계 항목을 비용으로 반영하면서 실적 쇼크도 잇따를 전망이다.

예고된 회계 대란은 회계감독당국이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기업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IFRS 회계 환경에 K-GAAP식 감독 잣대로 과거 회계처리를 재단해 혼란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당국이 되레 회계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IFRS를 전면 도입한 지 8년이 지났지만 한국 회계의 국제 신인도는 여전히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이럴 거면 왜 IFRS를 도입했냐”는 하소연부터 “차라리 K-GAPP 시대로 돌아가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의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가뜩이나 움츠러든 주식시장에 상장사 무더기 퇴출이란 암운이 드리우면서 개인투자자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