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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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관련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3기 신도시 지정 이후 부동산이 현안에서 멀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선 한반도 비핵화 등 남북문제를 비롯해 경제와 산업, 사회 각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그러나 1시간 30분 넘게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부동산이나 집값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사전 연설에서도 언급이 없었다.

아직 집값 잔불은 꺼지지 않았다. 또한 최근 공시가격 인상과 관련한 정부의 지침으로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여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의 취임 초기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그동안은 집값 안정이 국정 과제로 거론돼왔다. 서울을 중심으로 연일 집값이 급등하자 문 대통령이 직접 “부동산 가격을 잡으면 피자 한 판을 쏘겠다”며 관련 부처에 에둘러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미친 전·월세’란 표현을 써가며 “더욱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초강력 부동산 대책으로 평가되던 ‘8·2 대책’ 발표 직후 나온 발언이어서 더욱 이목을 끌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다. 문 대통령의 임기 60개월 가운데 20개월이 지나는 동안 모두 13번의 크고작은 대책과 정책을 내놨다. 2017년 ‘6·19 대책’을 통해 담보인정비율(LTV)을 축소하고 조정대상지역의 분양권 전매제한을 강화한 게 시작이었다. 그래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조정지역의 양도소득세 중과를 골자로 하는 ‘8·2 대책’이 나왔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8·31 대책’ 이후 가장 강력한 부동산 대책이란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성남 분당구와 대구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하는 ‘9·5 조치’가 이어졌다. 10월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을 도입하는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놨다.

같은 해 11월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첫 주택공급프로그램이다. 8·2 대책과 연계해 다주택자들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도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초 서울 송파구의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이 1%를 웃도는 등 집값 과열이 확산되자 다시 재건축 규제를 꺼냈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7월엔 주거복지로드맵을 구체화한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방안’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종합부동산세 개편 논의가 진행됐다. 8월엔 결국 ‘8·27 대책’을 통해 서울 시내 투기지역을 확대하고 광명과 하남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9월엔 추석을 코앞에 두고 굵직한 발표가 이어졌다. ‘9·13 대책’에서 신규취득 주택에 대한 임대사업자 혜택을 축소하고 대출규제를 강화했다. 8일 뒤엔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결국 규제 외에도 공급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을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과천과 하남 교산 등 신도시 대상지에 대한 지정은 지난달 19일 이뤄졌다.

천정을 모르고 치솟던 서울 집값은 3기 신도시 발표를 기점으로 꺾이더니 9주 연속 내림세를 보이는 중이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쏟아져 나온 대책들이 누적된 결과다. 문 대통령 입에서 더 이상 ‘부동산’이나 ‘집값’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 건 이 같은 대책들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가격 문제가 그만큼 현안과 멀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안이 산적하다. 서울을 옥죄자 집값 불안은 주변 도시로 확산하는 중이다. 촘촘하지 못한 규제가 계속 나오는 동안 현장의 혼란이어지면서 선의의 피해자도 속출했다. 대출규제나 재당첨제한 등에 대한 해석이 오락가락하는 게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 공시가격 인상 논란과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는 점에선 해당 사안을 전혀 심각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기 신도시의 교통망 확충과 관련해서는 이번에도 가시적인 대책이나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문제에 대해 “무분별하게 면제될 수는 없기 때문에 엄격한 선정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광역별로 1건 정도의 공공인프라사업이 우선순위대로 진행되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GTX는 A~C 3개 노선 가운데 인천 송도~남양주 마석을 잇는 B노선만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A노선은 이미 착공했고 C노선은 최근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B노선의 예타 면제 여부는 이르면 이달께 발표될 전망이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