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며 여러 뒷말을 낳았던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 ‘인선 드라마’가 지난 14일 마무리됐다.

당초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던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 번째 비서실장으로 낙점됐다. 하지만 ‘비서실장 대행’ 타이틀이 붙어 마지막까지 의문을 남겼다.

비서실장 인선 과정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혼란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른바 ‘재방카(재러드+이방카)’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 장녀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부부 대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권력암투설’이 흘러나왔다.

이방카 부부는 ‘백악관 고문’ 직함으로 외교안보에서 공공연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쿠슈너는 ‘만능 장관’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권력이 세졌고 차기 비서실장 경쟁에서 최종 후보 5명에 들었을 정도다. 멜라니아도 지난달 국가안보부보좌관을 공개적으로 경질해 버릴 만큼 ‘한 방’을 갖고 있다.

다만 경제와 통상 분야에선 ‘미·중 무역전쟁의 설계자’로 불리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충성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두 사람 모두 비서실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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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이번 비서실장 인선 과정을 ‘도널드 트럼프의 어프렌티스-비서실장편’이라고 풍자했다. 트럼프가 과거 진행한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를 닮았다는 것이다.

인선 드라마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켈리가 연말에 물러날 것”이라며 “하루이틀 내 후임을 지명하겠다”고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작년 8월부터 비서실장으로 일해온 존 켈리의 퇴진을 공식화한 것으로 주목받았다. 4성 장군 출신인 켈리 비서실장은 백악관 ‘문고리 권력’들을 견제하며 ‘군기반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방카 부부의 지나친 국정 개입을 비판하고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일가와 불화설에 휩싸였다.

‘켈리 경질’이 발표되자마자 36세 자산가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닉 에이어스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재방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날 “올해 말 (백악관을) 떠나겠다”며 백악관 내 2인자 자리를 걷어찼다. 표면적 이유로는 여섯 살짜리 세쌍둥이와 시간을 보내러 고향(조지아주)에 내려가고 싶다는 것을 내세웠다. 하지만 곧바로 “멜라니아 여사와 선임 참모들이 반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백악관 내 ‘암투설’의 시작이었다.

그 뒤 트럼프 대통령의 인선 작업은 꼬였다. 후보자들이 줄줄이 고사하면서 ‘비서실장 구인난’이라는 보도가 잇따라 언론에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10명이나 12명이 경합 중”이라고 반박했지만, 구체적인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백악관의 비서실장이 되려면 필요한 것은 쿠슈너와 이방카의 승인”이라는 기사를 띄웠다. ‘재방카’가 자기 편이 될 만한 인사를 비서실장으로 내놓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그러면서 이방카 부부의 견제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후보군으로 마크 메도스 하원의원, 데이비드 보시 전 트럼프 대선캠프 부본부장,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를 꼽았다.

권력암투설의 하이라이트는 13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가 5명으로 압축됐다”고 밝힌 가운데 ‘후보에 사위 쿠슈너가 포함됐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다음날엔 이방카 부부와 껄끄러운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가 비서실장직을 고사해 주목받았다. 그는 연방검사 시절 쿠슈너의 부친을 감옥에 보낸 인물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다수의 전·현직 백악관 참모들이 크리스티 전 지사에게 “이 건물(백악관)은 통제 불능”이라며 “누구라도 성공해서 나가기 힘들다”고 만류했다고 전했다.

‘쿠슈너 비서실장설’이 떠도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오후 불쑥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이 비서실장 대행으로 지명될 것”이라고 트윗을 날렸다. 금요일 퇴근이 한창이던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인사 드라마로 드러난 백악관 혼란상

WP는 ‘멀베이니 카드’가 주말 저녁에 갑자기 공개된 데 대해 줄지어 나온 ‘비서실장 구인난’ 보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후보군에 올랐던 인사들이 비서실장을 맡지 않으려 한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당황했고 더는 상황을 끌지 않기로 했다는 해석이다.

CNN도 “인선 발표 문제가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은 14일 오후부터”라며 “하루 동안 생각을 가다듬은 트럼프 대통령은 추측이 난무하고 후보군에 오른 인사들의 거절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서 결국 방아쇠를 당기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NBC방송은 “보통은 수많은 희망자가 몰리는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놓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구애하고 퇴짜를 맞는 특이한 광경이 연출됐다”고 꼬집었다.

인선 과정에서 드러난 백악관의 혼란상에 비춰볼 때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허수아비’가 될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USA투데이는 사설에서 “차기 비서실장은 가짜 비서실장이 될 것”이라며 “그 자리는 이미 이방카와 쿠슈너가 차지하고 있다”고 썼다. 주요 현안에서 이방카 부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에이어스 사례에서 보듯 멜라니아의 견제도 피해야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과 돌출행동, 각종 모욕도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직면한 위험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비서실장이었던 라인스 프리버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험한 욕을 들어가며 일하다 트윗으로 해고 사실을 알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쥐새끼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는 얘기가 나돈다.

WP는 멀베이니가 올해 어느 날 사적 만찬에서 비서실장직에 의욕을 보이며 이방카 부부를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 가족에게 충성맹세를 했다고 전했다. 비서실장이 되면 기자들에게 기밀을 흘리지 않고 대통령을 통제하려 하지도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암초’는 더 있다. 민주당은 내년 1월 하원을 ‘접수’하는 대로 각종 조사권을 발동할 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성추문과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과 트럼프 캠프의 유착 의혹)’을 조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망도 갈수록 백악관을 옥죄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 번째 비서실장이 2020년 재선 캠페인까지 완주하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멀베이니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교롭게도 멀베이니의 비서실장 직함에는 ‘대행’ 꼬리표가 붙어 있다. CNN은 “멀베이니 대행이 비서실장직을 얼마나 할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글로벌 리포트] 민낯 드러낸 백악관 암투…"비서실장 인선 '리얼리티 쇼' 같았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