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 비서실장은 권력의 핵심으로 정치적 야심을 키울 수 있지만, 신임을 잃으면 한순간에 정치 인생을 마감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독이 든 성배’라는 얘기가 나온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가 후임자에게 “최악의 직책을 맡은 것을 축하한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보수는 백악관 연봉 상한선인 17만9700달러(약 2억원)로 추정된다.

가장 불운했던 비서실장으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의 해리 홀드먼이 꼽힌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미 연방수사국(FBI)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18개월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케니 오도널은 대통령 암살을 지척에서 지켜봐야 했다. 대통령이 암살된 날 출장 일정을 직접 짰다는 죄책감 때문에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격무일 수밖에 없는 백악관 비서실장을 무사히 마친 뒤 승승장구한 사례도 꽤 있다. 제임스 베이커는 비서실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재무장관과 국무장관을 차례로 지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 비서실장으로 선임됐던 딕 체니는 국방장관을 거쳐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람 이매뉴얼은 시카고 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에너지 회사 엑슬론의 회장이 된 새뮤얼 스키너처럼 비서실장 경력(아버지 부시 백악관)을 통해 민간에서 승승장구한 사례도 있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많은 미국 대통령이 비서실장 인선에 공을 들였다. 불륜 추문 때문에 우군이 필요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백악관 예산국장이던 리언 패네타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패네타는 처음엔 고사했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였고 근래 가장 성공적인 비서실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