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돌려줄 돈 없어 발 '동동'
돈을 구할 길은 꽉 막혔다. 이미 가진 여윳돈을 모두 갭투자에 쏟아부은 탓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내줄 수도 없다. 집값은 각각 1억5000만원씩 오르긴 했다. 다주택자여서 양도소득세 중과가 되다보니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수익이 거의 없다. 지난해 말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을 한 터라 매각도 쉽지 않다. 박모 씨는 “올해 주변 지역 입주물량이 2만 가구 이상이어서 전셋값이 많이 떨어졌는데 내년에도 입주물량이 만만치 않아 더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라며 “욕심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투자한 게 화근이 됐다”고 말했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매입한 갭투자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전셋값 급락과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방법이 없어 흑자도산하는 투자자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갭투자자 고민 상담 줄이어
스타 부동산 강사들에 따르면 최근들어 갭투자자들의 하소연과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 갭투자 방식으로 아파트를 여러 채 매입한 이들이다. 역전세난 때문에 세입자를 못구해 밤잠을 못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1~2채면 감당할 수 있지만, 숫자가 많다 보니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강남에서 부동산교육센터를 운영 중인 한 스타강사는 “주변에 갭투자자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급락하고 있는 지방과 입주 물량이 너무 많은 수도권 지역에 투자자한 이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80% 전세가율이 30%대로 ‘뚝’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입주물량이 몰린 수도권 신도시들도 40%대의 낮은 전세가율을 보이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70~80%대였지만 집값이 오르는 동안 전세가격이 오히려 떨어지며 격차가 커졌다.
일명 남동탄으로 불리는 오송동에 위치한 ‘반도유보라아이비파크3차’를 보면 입주가 한창이던 2016년 9월 전용면적 59㎡의 매매가격은 2억7000만원, 전세가격은 2억~2억2000만원이었다. 전세가율이 81%에 달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올해에는 전세가율이 34%까지 떨어졌다. 최근 매매 호가는 4억1000만원으로 2년 전에 비해 1억4000만원 가량 올랐다. 하지만 전세가격은 평균 1억7000만원, 급전세는 1억4000만원까지 추락했다. 전세가율은 34~41%대에 불과하다. 옆 단지인 ‘금강펜테리움센트럴파크동탄’(2016년8월 입주) 전용 84㎡도 매매가격 4억3000만~4억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지만 전세는 1억8000만원에 성사되며 전세가율이 40%대에 그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전세가격은 3억원, 매매는 3억2000만원으로 전세가율이 93%에 달했다.
올해 들어 동탄2신도시의 전세가격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2만5000가구에 달하는 입주물량이다. 새 아파트가 계속 쏟아지면서 기존 입주 아파트와 새 아파트가 모두 세입자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 7월 입주를 시작한 ‘반도유보라아이비파크10차’ 전용 59㎡의 전세가격은 입주 직전 1억7000만원대였지만 입주 후에도 세입자를 찾지 못해 1억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지난 10월부터 이달까지만 7000가구 가까운 새 아파트가 집들이를 하고 있다. 내년에도 7개 단지 7000여 가구가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8·27 부동산대책’에서 조정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거래절벽이 시작된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에서도 입주물량이 몰리며 전셋값 하락세가 거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광교신도시가 속한 수원 영통구 전셋값은 지난주(11월26일 기준)에만 0.58% 떨어졌다. 올 들어 11월까지 3.41%가 하락했다. 광교 아이파크 등 신규 공급물량이 증가해서다.
지난 2016년 11월 4억17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던 원천동 ‘광교호반베르디움’(2014년 6월 입주) 전용 59㎡는 지난달 5억9000만원에 거래되며 1억7000만원 이상 뛰었다. 반면 2년 전 3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전세는 연일 하락세를 보이며 지난달 2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방에선 파산 직전 투자자도 많아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식고 있는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 깡통전세가 속출하면서 여러채를 보유한 갭 투자자들이 파산 직전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울산, 창원, 강원 등에서는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며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 전세’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 집값이 2년전 전셋값보다 낮은 상태다. 갭투자자는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는 형국이다. 한 스타 강사는 “남의 말만 믿고 갭투자에 나선 이들이 발빠르게 빠져 나오지 못해 대거 물려 있다”며 “조만간 갭투자자 물건이 경매시장에 많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마나 수요 기반이 탄탄한 부산의 상황도 심각하다.부산의 올해 전셋값은 3.55% 하락했다. 입주 물량이 대거 시장에 쏟아지면서 주거 선호지로 꼽히며 투자자들이 몰렸던 해운대구를 중심으로 역전세난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해운대구는 2016년 24가구에 불과했던 입주물량이 2017년 1171가구, 올해 1382가구로 늘었다. 내년에는 2992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기장군 정관신도시와 경남 양산신도시 등 조성으로 인구 유출이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도 전셋값 하락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해운대구 좌동의 ‘대림1차’ 아파트 전용 84㎡는 지난 2년 간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지난해까지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상승했지만 지난해 8월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를 강화하면서 반전했다. 3억원 초반대이던 전셋값은 2억원대로 떨어졌다. ◆갭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위험관리 철저히 해야
부동산업계에서는 갭투자 성립 전제 조건이 모두 깨지며 다주택자들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갭투자자는 매매와 전세가격의 차이가 작을수록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 매매가격이 상승하고 전세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좋다. 적은 돈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매매가격 상승이 멈추고,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보유 개수가 많을수록 위험하다. 연쇄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금을 돌려줄 방법이 없어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갭투자로 여러 채를 보유한 다주택 투자자는 집값이 오를 때는 수익이 좋지만, 떨어지기 시작하면 빠르게 파산할 수 있다”면서 “투자자뿐 아니라 세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수요가 있는 지역, 입지경쟁력이 있는 지역은 2~3년 뒤 전셋값이 다시 상승할 여지가 있는 만큼 최대한 버티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