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주식투자는 계기비행이다
계기비행이란 게 있다. 구름이나 악천후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때 계기판에 의지해 비행하는 것을 말한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우편비행기를 몰던 1920년대에는 모든 비행이 계기비행이나 시계비행이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첨단시대의 비행은 거의 자동으로 이뤄진다. 그래도 오지로 비행하거나 악천후일 때, 특히 첨단장비가 없는 소형 비행기는 계기비행이 필수다.

지난 10월 글로벌 증시가 갑자기 뇌우를 동반한 강력한 폭풍에 휘말렸다. 추락 직전에 간신히 고도를 잡았지만 기체는 여전히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중국과 한국 경제의 위기설 등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몰려오고 있다는 공포가 팽배하다. 코스피지수는 2000포인트를 방어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실질지수는 1600~1700포인트다.

세계적으로 10월에만 증시에서 5조달러가 증발했다. 23개 선진국 시장으로 구성된 MSCI 월드인덱스(MSCI World Index)는 연초 대비 14%나 하락했다. 금리 인상으로 안전자산인 채권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융시장의 휴거(?)가 가까워졌다는 10년 주기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러나 ‘10월 대학살’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다. 무역분쟁이나 금리 인상은 초등생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중국 경제 위기설과 한국 경제 위기설도 수년 동안 철마다 등장한 주제다. 물론 미국은 사상 세 번째로 긴 장기 호황으로 과열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뉴욕증시는 30년 평균 주가보다 30~40% ‘고평가’된 수준이다. 그래서 ‘당연히’ 언제라도 조정받을 수 있는 국면이다.

중국 경제가 어렵다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속성장의 후유증이다. 상하이증시가 지난 10년 동안 6300선에서 2500대로 추락한 것이 단적인 증거다. 그런데 오랫동안 진행 중인 ‘팩트’가 그 사이 별반 증시에 영향을 주지 않다가 10월처럼 한꺼번에 반영되는 것이 바로 주식시장의 알 수 없는 변덕이다. 이 와중에 한국 증시는 남들 오를 때 시늉만 내다가 빠질 때는 제대로 앞장서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증시가 이렇게 꼴사납게 된 것은 대외 의존적인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한몫했지만 베테랑 투자가 부족이 사태를 악화시킨 부분도 적지 않다. 최근 증시에는 금융위기 이후 상승하는 시장에만 참여한 신참(?)들이 주류다. 그래서 증시 속어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혈투(?)’는 처음이라 종종 공포로 판단력이 마비된다. 투매가 손절매(loss cut)를 부르고 손절매가 다시 투매를 부르는 악순환이다. 아닌 말로 도토리에 맞아 땅이 꺼진다고 믿는다. 사실 이 정도 난리는 세상을 엮어나가는 일상사다. 일부 전문가는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적으로는, 심지어 중국을 포함해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시장자유주의를 한 번쯤 손볼 때다.

지금 글로벌 금융시스템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우리나라도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인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는 문제다. 그러나 나라가 망할 듯 과장해서는 안 된다. 한 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고 새로운 경제로 진화하라는 신호다. 유럽은 1~2% 경제성장률과 7~8% 실업률로 30년을 살았다. 이웃 일본도 제로 성장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과는 분명히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이제부터는 소신과 뚝심의 영역이다. 투자의 세계는 거의 그리고 대부분 시계 제로 영역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투자는 신뢰할 수 있는 몇 가지 좌표에 의지한 계기비행일 수밖에 없다.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다양한 모델이 있지만 지난 100년 동안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제구실을 한 좌표는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었다. 이들이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판단은 당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