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12일 오전 4시50분

대형 증권사들이 중소형 증권사의 ‘텃밭’인 기업어음(CP)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단기자금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워 투자은행(IB)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KB증권은 올 1~9월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많은 14조3127억원어치 CP를 인수했다. 2016년만 해도 국내 증권사 중 CP 인수 규모 순위가 15위(7285억원)에 불과했지만 2년 만에 선두로 급부상했다. 기업들의 장기 자금 조달처인 채권발행시장(DCM)에 이어 단기 자금 조달처인 CP 시장까지 석권한 셈이다.
[마켓인사이트] CP 시장 공략하는 대형 증권사들
DCM 2위인 NH투자증권도 지난해 CP 인수 순위가 11위(1조9370억원)에 머물렀지만 올 들어 같은 기간 인수 물량을 4조4654억원으로 대거 늘리며 4위로 급부상했다. CP 시장의 강자였던 KTB투자증권은 올 들어 이 기간 7조8943억원어치를 인수하는 데 그치며 3위로 밀려났다. KTB투자증권은 2016년(27조7412억원)과 지난해(21조3903억원) 모두 20조원 이상의 CP를 인수하면서 1위를 기록했었다.

CP 시장의 또 다른 강자인 SK증권 역시 올초 CP 인수를 담당하는 종합금융팀 임직원들이 BNK투자증권으로 옮긴 여파로 고전했다. 지난해 5조9083억원이던 CP 인수 물량이 올 들어 1조693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까지 20위에도 못 들던 BNK투자증권은 ‘스카우트 효과’로 올해 2위(9조3196억원)로 껑충 올라섰다.

그동안 CP시장은 KTB투자증권과 SK증권 외 신영증권 한양증권 DB금융투자 등 중소형 증권사가 차지해왔다. 대형사들은 손이 많이 가는 것에 비해 수익이 적다는 이유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IB업계 관계자는 “CP 인수는 기업들의 발행은 잦은데 수수료는 적어 많은 물량을 거래해야 수익이 나는 ‘박리다매’ 업무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KB증권과 NH투자증권이 적극적으로 CP 시장에 뛰어든 것은 IB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이 짧은 만기로 자주 CP를 찍기 때문에 CP를 활발하게 인수하는 증권사일수록 발행 기업과 만날 기회를 늘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다른 자금 조달 프로젝트를 맡을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증권업계에선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받는 대형 증권사가 늘어날수록 CP 시장의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발행어음을 찍어 조달한 자금 중 50%를 기업 금융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채권과 대출 외에 투자할 수 있는 곳이 CP다. 단기금융업을 인가받은 증권사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두 곳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회사채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대형 증권사들이 CP 시장까지 차지하면 장·단기자금 조달 시장을 모두 장악할 수 있다”며 “대기업 외에 중견·중소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