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겸 개인 갤러리인 하오개그림터 앞에 서 있는 권오택 이향재 부부.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작업실 겸 개인 갤러리인 하오개그림터 앞에 서 있는 권오택 이향재 부부.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는데 여전히 비틀거리며 올라야 하는 머나먼 산길이다. 들꽃이 흐드러진 길가를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하늘을 덮어 자연스레 숲 터널을 만들었다.

화가가 산다는 산속 집을 찾아가는 길은 험했지만 자체가 그림이다. 푸르름이 화선지 가득 번진 동양화가 됐다, 캔버스에 연두색을 두툼하게 덧칠한 한 폭의 서양화도 된다.

사람의 삶은 참 끈덕지다. 간혹 산속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갈 때 드는 생각이다. 설마 사람이 살까 하는 산마을에도 어김없이 인적이 있다. 깊은 산중까지 와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고, 오랫동안 뿌리내려 사는 사람들도 그곳서 만난다.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전원생활을 목적으로 찾아와 집을 짓고 사는 도시인들도 그런 산중서 쉽게 만난다. 몇 겹의 산허리를 돌아간 길 끝서 사는 그들의 모습은 때론 위대하고 경이롭다. 삶 자체가 예술이다.
이향재 씨가 마을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모습.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이향재 씨가 마을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모습.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화가 권용택 이향재 씨 부부는 백석산 중턱서 산다. 그림을 그릴 곳을 찾다 만난 터다. 해발 1365m의 명산이지만 등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산이름이다. 주변이 모두 그런 산들로 둘러쌌다. 국립공원인 오대산, 계방산, 두타산, 가리왕산 등 주변 산은 모두 해발 1500m에 조금 못 미치거나 넘는다.

산줄기를 따라 평평한 땅들은 밭이다. 어느 골짜기든 발붙일 정도만 되면 개간해 고랭지 채소나 감자를 키운다.

서울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동쪽으로 갈 때 강릉 못 미쳐 진부라는 고원 마을을 만난다. 진부(珍富), 보배와 부자란 한자어다. ‘보배와 같은 부자’인지, ‘보배를 많이 갖고 있는 부자’인지 아무튼 부자들이 많다고 알려진 마을이다. 감자나 채소를 길러 매년 큰돈을 번다.

진부에서 정선으로 가는 42번 국도를 타면 깊은 골짜기다. 곳곳에 비경을 숨긴 계곡들이 많다. 길을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 숨차다. 이 길을 가보지 않고 강원도를 보았다 할 수 없다. 그만큼 사철 아름답다.

그 길을 따라가다 또다시 비탈진 산길을 한참 오른 후에야 하오개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하오개그림터란 권용택 화가 부부의 화실 겸 갤러리가 있다.

이곳 생활도 벌써 18년째다. 애초에는 경기도 수원서 살았다. 화가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79년에는 프랑스 르로 살롱전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고 지금까지 개인전만 16회를 열었다. 그러면서 입시전문 미술학원을 운영해 돈도 잘 벌었다. 민중화가로 사회활동도 열심히 했다. 나이 오십이 가까워지며 도시에서 얽힌 인연들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들로 너무 바쁘고 피로감이 왔다. 사는 것에 회의가 들어 그림만 그리고 싶어졌다. 도시를 떠날 생각을 했고 처음에는 가까운 화성 주변을 뒤졌지만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만난 것이 지금의 터다. 그림 그릴 장소로는 딱 좋은 환경이었고 땅값도 쌌다.
마을 담장에 그린 벽화.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마을 담장에 그린 벽화.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학원 운영은 제자들에게 넘겨줬다. 매달 수익금의 얼마씩을 보내왔다. 그것이 하오개그림터 생활비가 됐다. 지금은 정리하고 완전히 손을 뗐지만 그렇게 남겨놓고 온 도시의 사업이 있어 나름 안정적인 전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들 부부는 들꽃을 좋아한다. 처음 올 때 들꽃을 가꾸며 그림만 그리며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이웃들이 동네 이장을 하라며 등을 떠밀었다. 아내는 부녀회장이 됐다. 마을 일을 열심히 하고 났더니 민원요청이 더 늘었다. 권용택 화백은 수년째 평창송어축제 홍보국장, 평창군민 기자단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다. 아내 이향재 씨는 송어축제위원회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고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여러 차례 감사패를 받았다.

‘평창미술인협회’도 권용택 화가가 만든 단체다.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마음 맞는 지역 예술인 20여명과 2012년에 만들었다. 매년 2회 ‘평창 이야기’란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고 있지만 봉사활동과 재능기부도 많이 한다. 마을의 환경가꾸기 사업으로 담장에 벽화를 많이 그렸다.

권용택 화가는 전원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도 왕성하다. 특히 이곳서 살며 돌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변서 주워 온 청석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다. 이런 시도에 대해 치기 정도로 여기던 화단에서도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비슷한 작업을 하는 화가들도 생기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림을 접었던 아내 이향재 씨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창미술인협회 회원으로 전시회 참여도 하고, 남편 따라 마당의 돌에 야생화를 그린다. 돌에 그린 꽃들에서 향기가 난다.

전원생활 18년을 결산해 보면 이익이 많다. 무모하게 결정하고 너무 만만히 보고 시작한 부분도 있지만 이것저것 따져보면 이곳서 살길 잘했다는 것이 부부의 생각이다.

물론 잃은 것들도 많다. 도시서 잘 나가던 학원도 접었고, 도심의 요지에 살던 집도 산중턱 마을의 집과 바꿨다. 그것들을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다면 큰 부를 일궜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곳서 살며 그림을 얻었다. 특히 돌에 그리는 그림은 온전히 화가 권용택의 작품세계다.

몸 따로 생각 따로 그림 따로인 작품 말고, 몸도 생각도 그림도 똑 같은 그런 작품을 해보고 싶었던 화가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이것이 전원생활을 하며 얻은 작가로서 가장 큰 이득이다. 화가 부부의 전원생활 18년차 결산보고서다.
권오택 이향재 부부가 마당의 돌에 그린 그림 앞에 앉아있다.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권오택 이향재 부부가 마당의 돌에 그린 그림 앞에 앉아있다. 김경래 OK시골 대표 제공
* 전원생활 문답

권용택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문] 작품활동을 목적으로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런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입니까?

[답]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어디서 어떤 집을 짓고 살든 작품활동만 하며 전원생활 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시의 끈을 완전히 놓지 말라는 겁니다. 어차피 도시에서 생활비를 해결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또 터를 잡고 집을 지을 때는 주택과 카페, 민박 등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꾸미면 좋을 겁니다. 집 짓는 비용에 조금만 보태면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이 왔을 때 차도 마시고 묵어도 가고 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작품 활동을 하며 수익도 낼 수 있습니다.

[문] 지금 전원생활을 계획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까?

[답] 늦어도 60살 전에는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나이가 더 들고 시간이 지나면 못 하거나 후회합니다. 생각이 있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전원생활을 시작해야 하고 그래야 성공적입니다.

글=김경래 OK시골대표
정리=집코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