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지어요?”

[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밥 잘 지으면 커피도 잘 내린다?
한 커피 장인에게 ‘어떻게 하면 핸드드립 커피를 잘 내릴 수 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입니다. ‘밥은 우리집 전기밥솥이 잘 지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잘 짓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곧 커피 원두를 곱게 갈아 함께 내려보자고 했습니다. 아마추어와 장인의 커피 대결이 시작된 거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제가 이겼습니다. 다섯 명의 평가단이 만장일치로 낸 결론이었습니다. 그저 따라했을 뿐인데 장인의 그것보다 더 많은 향과 맛을 지닌 커피를 내리다니. 그날 배운 단순하고 명쾌한 커피 내리는 네 가지 팁을 나누고자 합니다.

1. 30초간 물에 불려라

밥 지을 때 쌀을 물에 불리듯, 잘 갈린 원두는 커피를 내리기 전 물에 불려야 합니다. 가는 물줄기를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아주 천천히 적시고 30초간 기다립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두는 뜨거운 열을 가해 볶아지는데, 이때 원두 안에 가스가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로스팅을 끝낸 지 3~4일 후에 가스가 어느 정도 빠져나간 원두가 가장 맛있다고들 하죠. 같은 이유로 물에 불리는 30초 안에 불필요한 가스가 방출됩니다. 30초를 넘어가면 커피의 향과 맛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곧바로 추출로 이어져야 합니다.

2. 물 온도는 90도에 맞춰라

밥할 때도 불 조절을 해야 하는 것처럼, 커피 내리는 물도 온도가 맛을 크게 좌우합니다. 온도가 낮으면 신맛이 강해지고, 너무 뜨거운 물로 내리면 쓴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90~95도 정도의 살짝 식힌 물이 가장 좋답니다.

3. 2분30초 안에 추출을 끝내라

커피를 추출할 때 두세 번에 나눠 시계방향으로 물을 돌려 붓는 과정은 2분30초를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추출하고자 하는 양의 30% 정도, 두 번째는 60~70% 정도. 신선한 원두는 추출할 때 둥그런 빵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끝까지 빵 모양을 살리면서 커피를 내리는 게 중요합니다. 종이 필터에 물이 직접 닿지 않아야 합니다. 커피 원두 입자 사이사이를 물이 흐르며 커피맛을 끌고 내려오는데, 종이에 부으면 물만 빠져나오게 됩니다. 추출 시간이 길어지면 잡맛이 섞여 나오게 되죠.

4. 아이스커피는 얼음 위에 추출

진정한 커피 마니아는 한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즐긴다지만 이런 폭염에는 쉽지 않습니다. 핸드드립 아이스커피는 커피를 받는 서버잔에 미리 얼음을 넣어놓고 그 위에 한 방울씩 커피를 내려야 합니다. 얼음과 닿는 순간마다 커피의 향과 맛이 가둬지기 때문이랍니다.

1~4번을 완성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신선하고 잘 볶아진 원두, 그리고 매일 한 잔씩 커피를 내려보는 노력. 좋은 쌀이 밥맛을 좌우하고, 오래된 엄마의 손맛을 감히 따라가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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