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야커피는 창립 후 17년간 성장을 멈춘 적 없는 토종 커피 브랜드입니다. 그동안 한 번도 광고 모델이 없었습니다. 다른 브랜드들이 화려한 모델과 배우를 내세운 것과 달리 커피와 새로운 메뉴만으로 승부해왔습니다. 올해 이디야에는 모델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 우승자인 데일 해리스(사진). 영국 출신인 35세 청년 바리스타는 이디야와 메뉴를 함께 개발하고, 브랜드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로 계약했습니다.

[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두 달 새 100만잔, 바리스타 챔피언의 커피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WBC 운영진은 지난해 이 대회의 한국 개최를 앞두고 실사를 벌였습니다. 세계에서 모이는 바리스타들이 연습하고 경연을 펼칠 공간이 필요한데, 적당한 공간을 못 찾아 무산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대회를 스타벅스에서 할 수도 없고….

그때 문창기 이디야커피 회장이 제안을 했습니다. 논현동 본사이자 플래그십 매장인 이디야커피랩을 대회 장소로 빌려주고 메인 스폰서를 하겠다고. 당시 문 회장은 “토종 커피 브랜드의 자존심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계 60개국에서 내로라하는 바리스타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해리스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해리스는 9년간의 긴 도전 끝에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커피에 기체를 주입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운명이었을까요. 이디야커피는 작년 봄 국내 최초로 질소를 주입한 니트로커피를 내놓고 한창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3일 이디야커피랩에서 만난 해리스는 “좋은 가격에 많은 사람이 맛있는 커피를 먹게 한다는 이디야의 철학이 나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가 WBC에서 우승했던 방식을 적용해 이디야의 니트로커피 신메뉴 개발을 함께 해보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그가 속한 영국 ‘해스빈커피’는 스페셜티 전문기업이자 소규모 원두 로스팅 회사입니다. 영국의 시골마을 슈루즈베리에서 자란 해리스는 신발가게, 식당, 동네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커피에 입문, 정착하게 됐다고 합니다.

해리스는 스타벅스와 코스타 등 대형 브랜드가 90%를 장악하고 있는 영국 커피시장과 달리 한국은 훨씬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카페 문화를 갖고 있어 놀랐다고 하더군요. 2000개가 넘는 이디야 매장에 맛있는 니트로커피를 똑같이 공급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벌써 석 달째입니다.

그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는 확산된 지 15~20년 정도”라며 “커피가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맛보는 것’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해리스와 이디야커피가 공동 개발한 3종의 니트로 커피 메뉴는 출시 두 달 만에 100만 잔이 판매됐습니다. 하루 평균 1만3000잔씩 팔린 셈이니, 그가 커피로 한국 사람들과 끈끈하게 연결된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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