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가 과연 정답일까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 세계.’ 구병모 작가(사진) 앞에 줄곧 붙던 수식어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180도 다른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번엔 현실에 바짝 발을 붙였다. 여성에게만 가중되는 ‘돌봄노동’의 불합리함을 다루는 신작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을 통해서다.

19일 서울 무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구 작가는 “그동안 구병모 하면 으레 떠올렸던 비현실적 세계관이나 환상성, 자연재난, 특수한 질병, 로봇 등 비일상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소설”이라며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네 이웃의 식탁》은 자녀를 세 명 이상 갖는다고 약속해야 입주가 허용되는 공동주택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네 부부가 입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각기 다른 속사정을 가진 네 부부는 아이들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공동 육아를 꿈꾼다. 직장이 비슷한 곳에 있어 자동차를 함께 쓰고, 쓰레기 분리 배출도 함께하는 등 공동체 생활을 이어나가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공동육아가 과연 정답일까요?"
동네 사람들의 아이를 한 곳에 모아 함께 기르는 ‘육아 품앗이’를 뜻하는 공동육아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는 현실과 맞물려 하나의 대안처럼 여겨져왔다. 여성가족부 역시 전국 곳곳에 ‘공동육아 나눔터’를 설치하는 중이다. 그러나 구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공동육아의 허상’을 이야기하는 것에 집중했다. “공동육아를 하면 여성은 소위 ‘독박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구 작가가 이 작품에서 던지는 주요 질문 중 하나다.

소설 속에선 아무리 공동육아를 해도 아이의 주양육자는 여전히 여자다. 남편은 돕지만 주체적이지 않다. 심지어 남편이 집안일을 담당하고 아내가 직장에 다니는 가정 또한 마찬가지다.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일들을 해결하는 건 언제나 엄마다.

작가는 “기존에 긍정적으로 쓰이던 말들을 전복하는 것이 문학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며 공동육아의 허점을 짚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마을공동육아에 대해 소개하는 책 한 권을 본 적이 있는데 목차에 온통 ‘함께하는 엄마’ ‘엄마의 교육’처럼 죄다 ‘엄마’에 관한 얘기뿐이더라고요. 현대 사회에서 가정의 규모가 한 마을 단위로 커진다고 해서 여성에게 가중되는 돌봄육아의 책임이 덜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자녀를 세 명 이상 갖는 조건으로 입주가 허용되는 공동주택이 추진된다는 구 작가의 상상이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 것은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구 작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가임기 여성지도)’ 같은 것을 만드는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여성을 출산 도구로만 인식하는 단순한 발상”이라며 “구태의연한 출산율 제고 정책을 쏟아내기만 해서는 더 이상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