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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하루종일 숙소인 싱가포르 세인트리지스호텔에 머물다 오후 9시 넘어 싱가포르 시내관광을 했다. 미·북 정상회담을 불과 12시간 남겨두고 심야 외출에 나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핵담판 앞두고 야간 시내 관광

김정은은 이날 오후 9시4분께(현지시간) 호텔 로비에 인민복 차림으로 나와 측근들과 함께 전용차를 타고 호텔을 떠났다. 김정은 차량은 싱가포르 현지 경찰이 호위했다.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이수용 당 부위원장, 이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등도 동행했다. 김정은이 호텔을 떠나기 전 오후 8시께부터 싱가포르 경찰 등이 투입되고 취재진의 접근을 막는 프레스센터가 설치되는 등 부쩍 경비가 강화됐다.

김정은은 먼저 싱가포르 관광 명소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향했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정원으로 ‘플라워돔’과 ‘클라우드 포레스트’ 두개의 거대 돔으로 구성돼 있다. 야간에는 조명을 이용해 거대한 높이의 버섯처럼 생긴 슈퍼트리 쇼가 유명하다. 김정은이 정원을 둘러보는 모습이 외부에 공개되진 않았다. 다만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이 일정에 동행해 김정은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김정은은 이어 오후 9시50분께 카지노복합리조트인 마리나베이샌즈의 스카이파크로 이동했다. 김정은이 카지노를 직접 둘러보진 않았지만 북한 원산 일대에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를 건설 중인 것과 관련있는 행보로 해석된다.

김여정이 먼저 도착해 스카이파크 시설 상황을 점검한 뒤 김정은이 들어갔다. 김정은이 관광을 하는 동안 현지 경찰이 출입구 곳곳에 배치돼 경계를 섰고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김정은은 12일 열릴 협상 준비를 마친 뒤 시내 관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협상 결과에 만족해 회담을 앞두고 심야외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들어 집중해온 경제 행보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관광과 컨벤션 산업으로 경제를 일으킨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직접 싱가포르 명소를 둘러봤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올 들어 경제를 챙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는 북한 원산 갈마반도 명사십리 등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당일에는 철도 완공 현장을 찾았다.

싱가포르 발전 모델은 김정은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 싱가포르는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성장을 이뤘다. 싱가포르는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한 뒤 리 전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 현 총리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정당과 의회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세습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적으로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정부가 직접 사회 곳곳을 관리하면서도 1인당 국내총생산이 5만7713달러로 세계 8위에 해당한다.

◆오전엔 미·북 회담 최종 점검

김정은은 이날 밤 외출에 나서기 전까지는 호텔에서 참모진으로부터 미·북 회담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최종 전략 점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싱가포르에 도착해 리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오후 7시14분께 호텔로 돌아온 것을 감안하면 26시간가량 호텔에 머무른 셈이다. 서방국가에 첫발을 내디딘 김정은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취재진 100여 명이 호텔 인근에서 온종일 진을 치고 있었으나 그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호텔 주변은 물론 내부에선 김정은에 대한 철통 경호가 이뤄졌다. 김정은과 북측 인원이 묵고 있는 16~20층에는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 경호원이 층마다 대기하고 외부 방문객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1층에선 검색대를 통해 투숙객 소지품을 확인했다. 김정은은 맨 위층인 20층의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호텔 내 식당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은은 북한에서 직접 공수해온 식재료로 식사를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참모진은 이날 회담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날 오후까지 리츠칼튼호텔에서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함께 정상회담 합의문 최종 조율을 위한 실무회담을 벌였다. 이용호 외무상도 이날 오전 발라크리쉬난 외무장관과 만나 미·북 회담 진행 사항을 논의했다.

싱가포르=김채연/이미아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