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여름 강원도 한 목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오른쪽)과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
1999년 여름 강원도 한 목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오른쪽)과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한국의 대표 가전업체 중 한 곳에 머물던 LG그룹을 글로벌 일류 정보기술(IT) 그룹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럭키금성’으로 내려 온 사명을 글로벌 시장에 어울리는 ‘LG’로 바꾸는 작업도 구 회장이 주도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와 같은 위기를 넘는 과정에서도 사업군을 다각화하고 그룹 덩치를 키웠다. 구 회장 취임 직전인 1994년 30조원대였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160조원대로 23년 만에 5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해외 매출도 약 1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11배로 증가했다.
전자·화학 투톱으로 글로벌 경영… 매출 160兆 세계적 기업 일궈
전지·디스플레이 사업 세계 1위로

사업 다각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구축한 일은 구 회장의 가장 큰 경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과감한 투자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했다. 2차전지, 디스플레이, 통신 사업이 대표적이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구 회장이 제안해 시작됐다. 1992년 영국 출장에서 2차전지를 처음 접한 구 회장(당시 부회장)은 직접 2차전지 샘플을 구해 계열사 연구원들에게 갖다줬다. 2005년 2차전지 사업에서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을 때도 “우리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이런 집념 덕분에 LG화학은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다투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LG화학은 현대·기아자동차,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르노, 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기차 배터리 수주액만 42조원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 임직원들과 노사 화합 차원에서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구본무 회장(왼쪽 두 번째).
2000년대 초반 임직원들과 노사 화합 차원에서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구본무 회장(왼쪽 두 번째).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LG디스플레이도 구 회장이 주도적으로 키웠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주도한 ‘빅딜’ 과정에서 눈물을 머금고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넘겼다. 대신 LG전자와 LG반도체에 남아 있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부를 합쳐 LG LCD(현 LG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켰다. 단기간에 사업을 키워내기 위해 네덜란드 필립스와 합작사를 설립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민간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달러의 자금을 필립스로부터 유치했다. 1995년 15억원에 불과하던 LG디스플레이 매출은 지난해 28조원으로 급증했다. 1995년 이후 지난해까지 22년간 투자한 자금은 40조원이 넘는다.

통신사업도 구 회장 재임기간 주력사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구 회장은 1996년 LG텔레콤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뒤 데이콤과 파워콤을 잇따라 인수했다. 2010년 그룹 내 통신 3사를 합병해 LG유플러스를 출범시킨 뒤 과감한 투자로 이동통신 시장의 판을 흔들었다.


글로벌 1등 ‘승부 근성’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은 것에 과감히 도전해 최고를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1995년 회장 취임 일성이다. 구 회장은 ‘인화(仁和)’로 잘 알려진 LG그룹 기업 문화에 ‘세계 1등’과 ‘초우량 기업’ 마인드를 심기 위해 노력했다.

매년 초 LG인화원에서 그룹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1박2일 글로벌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구 회장은 ‘승부 근성’이 강한 경영자였다. ‘내기 골프’에도 능했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내기할 때는 잘하지만 그냥 칠 때는 잘 못하는 고무줄 핸디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권한을 아랫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위임했다.
2016년 12월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대화하는 구본무 회장.
2016년 12월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대화하는 구본무 회장.
‘정도 경영’도 정착시켰다. 1999년 LIG그룹 분리를 시작으로 2003년 전선과 도시가스 사업을 LS그룹으로, 2005년 정유와 유통사업을 GS그룹으로 분리했다. 대주주 일가들이 차례로 계열분리됐지만 별다른 잡음이나 분쟁은 없었다.

2003년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2002년 10월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제조한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구본무 회장.
2002년 10월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제조한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구본무 회장.
인재와 연구개발(R&D)에 대한 식견도 남달랐다. 구 회장은 미래 자동차산업을 위한 전장 사업과 친환경 에너지 생산 및 저장 사업에도 한발 앞서 투자했다. “지금 씨를 뿌리지 않으면 3년, 5년 이후를 기대할 수 없다.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미래에 투자하자”(2012년 신년사)고 강조했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 파크’엔 R&D를 통해 세계 1등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는 게 LG 측 설명이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