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목맨 경제… 삼성전자 빼면 상장사 영업익 줄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작년 1분기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를 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것은 내수 침체와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유통·서비스업 실적이 나빠진 작년 2분기 이후 세 분기 만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과 미국발(發) 글로벌 무역 분쟁 등 대내외 악재가 국내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계 전반의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IT 착시’ 현상 심화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12월 결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544곳(금융회사 제외)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42조8026억원으로 집계됐다고 16일 발표했다. 1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작년 1분기(38조9247억원)보다 9.96% 늘어난 규모다. 이들 기업의 매출과 순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각각 4.82%, 2.63% 증가한 463조8940억원과 32조8337억원이었다.

하지만 올 1분기에 사상 최대 분기 영업이익(15조6422억원)을 거둔 삼성전자를 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1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7조1604억원과 21조1452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6.43%, 13.01% 줄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1분기 31.80%에서 올 1분기 46.95%로 급격히 높아지면서 ‘반도체 착시’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상장사 전체 이익은 늘었지만 이익 증가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25.34%→9.96%)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력, SK가스, LG상사, 삼성중공업 등 1분기 적자(전년 동기 대비)로 돌아선 기업은 흑자 전환 기업(39곳)보다 많은 56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적자 전환 기업은 48곳이었다. 업종별로는 원화 강세 등의 여파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45.53% 급감한 현대자동차 등 운수 장비 기업의 이익 감소세(평균 감소율 66.47%)가 두드러졌다. 정유·화학(-14.73%), 통신(-10.38%), 기계(-6.32%) 업종에 속한 기업들도 부진한 실적을 내놨다.

이익이 줄어들면서 기업들의 재무구조도 나빠졌다. 지난해 말 110.08%였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올 3월 말 110.52%로 0.44%포인트 올랐다.

비교적 선방한 건설·음식료

전문가들은 작년부터 호황 국면이 지속된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국내 상장사들의 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등은 ‘반도체 슈퍼 호황’이 올해 끝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영업이익 전망치에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165곳(증권사 세 곳 이상의 실적 추정치가 있는 기업) 중 삼성전자를 제외한 기업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 15일 기준 120조4539억원으로 6개월 전(128조1968억원)보다 6.04% 감소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하반기 같은 ‘상승 랠리’를 펼치지 못하는 것은 기업의 이익 증가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식시장의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던 건설회사와 대표적 내수 업종인 음식료 관련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GS건설과 한신공영은 올 1분기에 작년 동기보다 각각 561.18%, 489.40% 급증한 영업이익을 올렸다. 대한제당(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134.31%), 삼양사(91.96%), 삼양식품(37.93%), 오뚜기(28.49%) 등 음식료 기업도 1분기 중국 수출 증가 등에 힘입어 작년 동기보다 평균 40.07% 늘어난 영업이익을 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에 힘입어 호텔신라(342.23%), 신세계(45.88%), LG생활건강(9.17%) 등 백화점·호텔·화장품 관련 기업의 이익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하헌형/노유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