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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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 발표를 놓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북한이 남북한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줬다는 긍정론과 비핵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내놓은 알맹이 없는 퍼포먼스라는 비판도 있었다.

◆“北, 비핵화 향한 첫 시작”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그동안 핵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북한 노동당 차원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전원회의에서 핵 폐기를 시사하는 내용이 나왔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직접 결단을 통해 경제 발전으로 노선을 바꾼 만큼 핵 문제와 관련해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의 이번 발표에 대해 ‘시간벌기용’ 전략이라고 보는 시각에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시기상으로 북한이 남북, 북·미 간 비핵화 회담을 앞두고 기존의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사회주의적 경제발전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택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 동결 개시 선언을 한 것인데, 비핵화를 향한 첫 시작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또 “김정은이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을 향해 제기되는 여러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다”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경제 건설을 하려면 우선적으로 대외 관계를 풀어야 하고 그러려면 핵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며 “그런 의미에서 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한 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핵 동결의 초기 조치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이 이런 조치를 동시행동이 아니라 먼저 취함으로써 미국을 향해 진정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다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없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도 추후 실질적 조치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며 “핵물질 대량생산 문제와 관련해서도 언급이 없는데 북·미 대화에서 협상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핵 동결 선언에 불과”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 발표를 보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며 “비핵화를 위한 진전이 아니라 핵 동결 선언에 불과하고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을 정상국가이자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면 더 이상의 도발을 하진 않을 테니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달라는 기존의 반복된 제스처”라는 얘기다.

김 전 차관은 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문제도 실제 이행이 중요한데, 제대로 감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북한이 이미 이런 내용을 발표한 상황에서 이번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나 기존의 선언을 뛰어넘는 새로운 내용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도 “기존의 핵은 그대로 두고 미래의 핵을 동결하겠다는 의미에 불과하다”며 “핵을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지난해 이미 핵보유국 선언을 했고 목표 달성을 했으니 더 이상의 핵실험이나 도발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라고 부연했다. 남 교수는 “북한의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라며 “앞으로 협상에서 지금보다 더 통 큰 제안들을 조금씩 내놓으면서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면서도 미국과 대화를 위해 핵 동결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며 “상당히 정교한 대외 발표를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면서도 “ICBM 시험중단과 핵 실험장 폐기는 그동안 미국이 우려해온 부분으로 미국으로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이미아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