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구로동 동반성장위원회에서 만난 권기홍 동반성장위원장은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반성장 문화를 전도사처럼 설파하고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위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 4일 서울 구로동 동반성장위원회에서 만난 권기홍 동반성장위원장은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반성장 문화를 전도사처럼 설파하고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위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청년실업, 저출산, 인구절벽, 중산층 몰락 등 한국 경제가 처한 문제는 대부분 대·중소기업 간 지나친 임금격차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걸 해소하지 않고는 어떤 정책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권기홍 동반성장위원장(69)의 말이다. 그는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높여 고용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하고, 안되면 치킨집을 차려 영세자영업자가 양산된다는 얘기였다. 그는 “이런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진통제 처방과 같다”고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 진통제를 놓는 대신 체질을 바꾸는 치료법이라는 설명이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간 분쟁을 중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다. 경험이 풍부한 관료이자 학자인 그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했다. 지난 4일 서울 구로동 동반성장위원회에서 권 위원장을 만났다.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중소기업 간 지나친 임금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에서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노동부 장관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임금격차를 해소해 우수 인재가 중소기업에 많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경쟁력도 중소기업에 달려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비용을 낮추기 위해 납품단가를 인하하면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어렵고,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대기업 경쟁력도 약화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한국 경제 전반의 체질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동반성장 문화를 전도사처럼 설파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위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환위기 이전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75%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61%입니다. 제조업 기준으론 51%밖에 안 됩니다. 그것을 줄이는 길이 동반성장 문화의 확산입니다. 이를 통해 성공적인 몇몇 사례를 내놔야 합니다. SK이노베이션과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미 이런 사례를 보여줬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노조가 임직원 급여를 1%씩 모은 기부금에 회사가 같은 금액을 기부해 43억원의 협력사 상생기금을 조성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난 1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2·3차 중소 부품 협력사 5000여 곳에 총 15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상생협력기금에는 500억원을 출연했습니다. 그동안 1차 협력사를 지원한 사례는 있었지만 2·3차 협력사까지 자금을 지원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정부가 1960년 이후 500조원을 중소기업에 지원했지만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펴고 있는 겁니다. 지난 10년간 대기업 중심의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기업들이 엄청난 유보금을 쌓아두고 투자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밑에서 펌프질이라도 해야 하고, 그것이 분수효과입니다. 소득주도 성장입니다. 그 출발이 최저임금 인상입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극약처방이 필요한 때입니다. 부작용이 생기면 해결책을 찾으면 됩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는 동반성장위가 추진해온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실험 가치를 훼손하는 것 아닌가요.

“자율적 합의는 중요하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강제력도 없습니다. 적합업종 권고가 3년 단위로 일몰되면 새로운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국회에서 의원 입법안이 발의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입법화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규제를 만들어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규제의 대상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자율적 합의 과정에 참여하든지 선택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율적 합의가 더 잘될 수 있습니다. 규제를 만들어 자율적 합의에 나서는 기업이 많아지면 발전이 있는 겁니다. 동반성장위가 그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그 정책이 영세자영업자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도와주면 비중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도 했습니다. 해결책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기업의 은퇴 연령을 높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일찍 은퇴해 치킨집을 차리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는 어렵습니다. 10년, 20년이 걸립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당장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입니다. 정부가 어쩔 수 없는 진통이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의무 방기입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은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진통제와 같습니다. 물론 진통제만 쓰는 의사는 문제가 있습니다.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처방도 해야 합니다. 비정상적인 자영업자 비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업종이 있으면 얘기해 주십시오.

“저는 약간 구식입니다. 제조업이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조업 없이는 사상누각입니다. 한때 한국을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얘깁니다. 네덜란드와 같은 도시국가는 금융 허브로 살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입니다. 경제가 자기완결성을 갖추지 못하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출발은 제조업입니다. 4차산업은 2차산업(제조)에 3차산업(정보기술·IT)을 접목한 것입니다. 제조업이 부실하면 첨단 IT도 소용없습니다. 바퀴가 부실해 자주 펑크가 나는데 자율주행차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최근 제조업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좀 있습니다. 독일은 아직 기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닥쳐도 쉽게 극복합니다. 주물 등 뿌리산업이 튼튼해야 합니다. 협력사와 부품사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이 돼야 합니다. 한국 제조업이 가격 경쟁을 탈피해 품질 경쟁에서 승리하면 선진국이 됩니다. 이를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필요합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셨는데 한국형 ‘히든 챔피언’ 육성 방안이 있을까요.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제시한 기준(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 매출 4조원)에 해당하는 히든 챔피언의 절반 이상은 독일 기업입니다. 이는 국가 주도로 단기간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독일은 19세기 전형적인 분권 국가로 출발했습니다. 여러 개의 독립국이 성을 쌓고 전쟁을 하며 통일된 현대국가로 발전했습니다. 주물 단조 등 제조업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고, 이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수천 개의 강소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이들로부터 나옵니다. 한국은 그 반대입니다. 근대화 이전 조선은 전형적인 중앙집권 국가였습니다. 고속성장을 추구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수출성장 정책을 펼쳤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체질 개선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천천히 꾸준하게 상생문화를 전파해야 합니다.”

▶동반성장위의 위상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동반성장위의 미래 모습은 무엇입니까.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 위상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 때 위상이 약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건 동반성장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전 부처가 확실하게 동반성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위에 거는 기대도 큽니다. 일정한 역할을 해내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권기홍 위원장은 누구?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인 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 간사를 맡기 전까진 20년간 학자로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구·경북(TK) 인맥으로도 꼽힌다. 2002년 노무현 후보 영남권 공동유세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부산선대본부장이던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권기홍 위원장은 노동부 장관으로 함께 국정에 참여했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권에 도전할 때 당내 경선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에는 문재인 대선캠프 조직인 더불어포럼 공동대표와 포용국가위원회 고문 등을 맡았다.

그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출신으로 독일 유학 중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수리적으로 증명했다. 독일식 노동자 경영참가 제도를 꾸준히 연구했다.

△1949년 대구 출생 △1968년 경북고 졸업 △1973년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박사 △1985~2005년 영남대 경제학과 교수 △1997~1998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3~2004년 제20대 노동부 장관 △2005~2008년 제14대 단국대 총장 △2008~2013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전설리/김기만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