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대 '미래기술 드림팀' 떴다
양자컴퓨터, 차세대반도체 등 ‘미래 선도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 서울대와 삼성이 손잡았다.

27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과 삼성종합기술원에 따르면 양측은 10년 뒤 한국 산업에 필요한 차세대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서울대·삼성 미래연구 협력’(가칭)을 지난 2월부터 가동 중이다. 물리 화학 수리통계 등 기초과학 분야 국내 최고 수준인 서울대 교수들과 삼성의 ‘두뇌’ 격인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진이 팀을 이뤄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 나선 것이다.

둘 사이의 협력은 △양자컴퓨터, 퀀텀닷 등 다섯 개 첨단분야 공동 연구 △교수 연구년 활용 협업 강화 △정기 학술교류 포럼 등의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서울대 교수와 삼성 연구진이 주제별로 3~5명씩 참여해 팀을 이뤄 연구하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이번 협력은 한국 연구계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온 기초와 응용 연구 간 괴리를 해소할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이 자금을 지원하고, 대학은 기술을 이전하는 일회성에 머물던 지금까지의 산학협력을 개방형 혁신을 통해 한 차원 높였다는 설명이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비밀주의를 고수해온 삼성종합기술원이 서울대에 문호를 개방한 점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실용 과학’을 하는 공대가 아니라 ‘기초 과학’을 연구하는 자연대와의 협력을 선택한 것은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기술에 투자한다는 삼성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협력은 10~20년 뒤 ‘알파고’급 대박을 터뜨릴 도전적인 연구 과제를 탐색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대 자연대에선 5명의 핵심 교수진을 중심으로 팀당 3~5명씩 총 20여 명의 교수가 참여한다. 물리 분야에선 이탁희·차국린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화학은 이동환 화학부 교수, 수리통계는 강명주 수리과학부 교수 및 김용대 통계학과 교수가 각각 협력을 주도한다.

세부 연구 주제는 △저연산 고속화 이미지 프로세싱 △퀀텀(양자) 컴퓨터 응용 알고리즘 △차세대 퀀텀닷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활용한 신유기물질 합성법 △반도체 신물질 핵심 원리 등 5가지다. 이는 딥러닝(사람의 뇌를 응용한 기계학습) 등 인공지능(AI), 실감영상기술(증강현실·홀로그램·지문센서), 신소재(나노·그래핀), 사물인터넷(IoT), 헬스케어 등 삼성종합기술원의 핵심 연구분야에도 닿아 있다.

한 서울대 자연대 관계자는 “현재 반도체 소자 기술의 근간인 금속산화물반도체(CMOS)를 대체할 신소재, 전도성을 유지하면서도 휘어지거나 어딘가에 붙일 수 있는 분자소자기술, 자율주행차·AI·로보틱스 등에 쓰일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 개발 등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연구년을 보낼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것도 삼성 특유의 비밀주의를 감안할 때 상당한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협력은 상아탑에 머물러 있던 서울대 자연대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그동안 서울대 자연대 교수들은 이른바 ‘논문’이 나오는 연구에 몰두하느라 산학협력엔 관심이 적다는 일각의 비판을 들었다. 상용화에 근접한 기술일수록 기술 성숙도가 높기 때문에 논문을 쓰기 어렵다.

김성근 서울대 자연대 학장은 “눈앞의 이삭줍기에 급급하지 않고 먼 미래의 기술을 대학과 기업이 함께 모색해나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한국 대학과 기업 간 산학협력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