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대수 가점 높여도 일조권 등 20점 안돼야 E등급
소방활동 용이성도 '주관적'
"주민의견 반영 시늉만" 반발
5일부터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 방안이 시행되면서 서울 목동, 상계동 등 상당수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주차’와 ‘소방’ 관련 일부 항목의 가중치가 다소 높아졌지만, 이를 재건축 추진의 청신호로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여부를 판가름할 ‘구조안전성’ 비중이 50%를 차지하고 있어 일부 세부 항목 조정만으로는 뒤집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주차와 소방 조건 완화 영향은
국토교통부는 지난 4일 발표한 ‘재건축 안전진단 정상화’ 방안에서 △구조안전성 △건축마감 및 설비노후도 △비용분석 △주거환경 등 4개의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주거환경’ 기준을 조정했다. 지난달 20일 원안 발표 당시의 ‘주거환경’을 구성하는 9개 세부 항목 중 ‘가구당 주차 대수’와 ‘소방활동 용이성’ 등의 비중을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주차장이 비좁은 단지의 재건축 가능성을 높여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를 통해 안전진단을 통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다. 우선 주거환경의 9개 항목 총점이 20점 이하라면 재건축이 가능한 E등급이 나온다. 이를 위해선 주차·소방 용이성 이외 나머지 50%를 차지하는 도시미관, 침수 피해 가능성, 일조환경, 사생활 침해, 에너지 효율성 등의 항목에서도 각각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이다.
그나마 가점 비중이 높은 주차 항목도 새 기준(가구당 0.6대 미만)을 맞추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컨대 목동신시가지의 가구당 주차 대수는 단지마다 제각각이다. 1단지는 가구당 주차 대수가 0.58대여서 새 규정(0.6대 미만)에 따라 E등급을 받을 수 있다. 목동신시가지 2단지는 0.78대로 0.6대를 넘는다. 상계주공 2단지는 0.73대, 3단지는 0.5대다. 경기 분당과 일산신도시도 일부 단지에 지하 주차동이 있어 대부분 가구당 주차 대수가 0.6대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계동 D공인 관계자는 “주차 및 소방 규정 완화는 안전진단 강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시늉을 낸 조치로 인식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비업체인 신원섭 미성디씨엠 대표는 “분당 등 1기신도시는 부촌으로 변모해 1가구당 2차량 보유자가 많아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며 “삶의 질 측면에서 주차 공간에 대해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방활동의 용이성 항목도 주관적인 잣대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도로 폭 6m 확보는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도로 폭이 좁아도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는 안전진단 기관에서 평가한다. 이 같은 기준을 목동이나 상계동 개별 단지에 일률적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 관계자는 “주차나 소방 조건 변경은 재건축 추진의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조·소음 등 낙제점 받기 어려워
주거환경을 구성하는 나머지 일조·층간 소음·침수 항목 등의 세부 항목에서도 낙제점 수준을 받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설안전공단에 따르면 주거환경(평균 46.6%)은 구조안전성(평균 60.2%) 다음으로 평균 점수가 높다. 2015년 시설안전공단이 민간업체와 함께 1977~1992년 사이 완공된 전국 아파트 82개 단지의 안전진단 실태를 분석한 결과다. 한 민간 안전진단업체 관계자는 “해가 중천에 뜬 낮 12시 전후로 일조량을 측정하는데,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아 대낮인 줄 모를 정도일 때에야 D등급을 받는다”며 “층간 소음도 위층 발걸음 소리가 쉽게 들릴 정도가 아니라면 낙제점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전진단업계는 목동 1~14단지는 대부분 각 단지 내부에 널찍한 보행도로가 조성돼 있어 대부분 일조가 양호하고 사생활 침해 등의 정도가 낮다고 설명한다. 강동구 명일신동아는 단지 옆에 근린공원, 맞은편에는 학교가 있고 주변에 높은 빌딩이 거의 없어 일조량이 넉넉하다.
침수 항목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목동 A공인 관계자는 “목동 일대는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 빗물펌프장 등이 있어 단지가 침수될 확률은 극히 낮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B안전진단업체 대표는 “목동 신시가지 일대, 강동구 명일동 등은 상대적으로 주거 여건이 쾌적한 탓에 사업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며 “결국 주거환경 평가보다는 구조안전성 평가가 재건축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수/선한결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