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에서 새 안전진단 기준 시행을 반대하는 목동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민경진 기자
지난 3일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에서 새 안전진단 기준 시행을 반대하는 목동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민경진 기자
국토교통부가 5일부터 시행하는 새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의 일부 평가 항목을 손질했다. 재건축 예정 단지의 대규모 집단 반발에 한 발짝 후퇴한 모양새다. 단지 내 주차 공간과 소방활동 용이성 등의 가중치를 늘리기로 했지만 사업에는 별 효과를 미치지 못하는 ‘선심성’ 대책이란 분석이다.

◆소방·주차공간 등 평가 비중 높여

국토부는 안전진단 주거환경 평가항목 중 세부 평가 기준 일부의 가중치를 높였다고 4일 발표했다. 주거환경 평가 중 기존 17.5% 비중을 차지하던 소방활동 용이성 항목은 25%로, 가구당 주차 대수는 20%에서 25%로 가중치를 올렸다. 가구당 주차 대수의 최하등급(E등급) 기준도 기존 현행 규정의 40% 미만에서 60% 미만으로 완화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주택단지는 가구당 차량 1대(전용 60㎡ 이하는 가구당 0.7대) 이상 주차할 수 있도록 주차공간을 설치해야 한다.

지난달 안전진단 기준 발표 이후 여러 재건축 예정·초기 단지의 반발 움직임에 국토부가 내놓은 절충안이라는 게 정비업계의 해석이다. 국토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중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기존 20%에서 50%로 높이고, 주거환경 부문은 40%에서 15%로 내리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지난 2일까지 행정예고했다.

새 기준은 물리적 구조에만 치중해 거주하는 주민의 삶의 질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3일엔 서울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 모임이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새 안전진단 기준 적용을 피하기 위해 안전진단 용역 긴급공고를 내는 단지들도 잇따랐다.

◆‘선심성 대책’ 지적도

양천구 목동 일대 1~14단지(2만6635가구), 강동구 ‘삼익그린2차(2400가구)’, 마포구 ‘성산시영(3710가구)’, 노원구 ‘월계시영(3930가구)’ 등 재건축 연한(30년)을 최근 채우거나 채울 예정인 단지들은 개정안에서 주거환경 항목 비중을 늘려달라고 요구해왔다. 이 단지들은 대부분 1980년대 중후반 조성돼 단지 내 지하주차장이 없다. 3100가구 규모 대단지인 목동14단지는 지상 주차 공간이 1879대에 불과하다. 월계시영(미성·미륭·삼호3차) 단지 주민들도 주차난을 겪고 있다. 주차 대수 항목 점수가 낮으면 소방활동의 용이성 항목도 낮을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이 이중·삼중으로 주차하다 보니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서다.

그러나 국토부의 입장 변화가 재건축엔 실질적 영향을 못 미칠 것이라는 게 정비업계 중론이다. 완화된 항목은 주거환경 세부평가기준 9개 중 2개에 그치는 데다 주거환경 전체 항목의 평점 비중은 오히려 낮아졌기 때문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전체 판단기준 총점을 100으로 본다면 소방활동 용이성과 가구당 주차 대수 항목 비중은 각각 3.75점 정도에 그친다”며 “평가항목 비중의 절반을 구조안전이 차지하는 만큼 두 항목의 영향은 사실상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동 재건축 추진 단지의 한 주민은 “국토부의 기준 완화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시늉일 뿐”이라며 “재건축 사업엔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안전진단 결과 100점 만점에 30점 이하면 ‘재건축’, 31~55점은 ‘조건부 재건축’, 55점 초과는 ‘유지보수’(재건축 불가) 판정이 내려진다. 전체 평점이 기준보다 높더라도 주거환경 평가에서 E등급을 받으면 구조안전성 등 다른 평가 항목 점수와 관계없이 재건축사업에 들어갈 수 있다.

5일부터 안전진단기관에 안전진단을 의뢰하는 단지는 개정 기준을 적용받는다.

선한결/민경진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