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파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구한 전농중 학생들에 표창을 수여한 조희연 교육감. / 사진=한경 DB
지난달 한파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구한 전농중 학생들에 표창을 수여한 조희연 교육감. / 사진=한경 DB
“교육자치의 새 시대, 혁신을 이어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 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새해 주요 업무계획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연 조희연 교육감(사진)의 일성은 출사표 같았다. ‘혁신미래자치교육’과 ‘교육선진국을 향한 담대한 전진’은 각각 핵심 브랜드와 캐치프레이즈로 읽혔다.

올 6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조 교육감은 2014년 선출 이후 재임 기간을 혁신학교·무상급식·학생인권의 혁신교육 1기에 이은 2기로 규정했다. “2기에선 혁신교육 성과의 일반화에 역점을 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는 혁신교육 3기의 필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획일적 표준과 경쟁에서 벗어나 학교 자율과 다양성을 골자로 하는 교육개혁을 안착시키고, 전국적으로 확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견문 곳곳에 ‘재선 도전’ 의지가 엿보였다.

조 교육감뿐이 아니다. 3월께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인 이재정 경기교육감도 재선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연초부터 현직 교육감을 비롯해 자천타천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내리며 군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새로 선출될 교육감은 무게감이 다르다. 권한이 대폭 커져 주요 교육정책의 핵심 결정자로 올라선다. 교육부가 기능 이양을 통한 교육자치 강화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 지정 및 취소에 대한 교육부 장관 동의 절차를 폐지, 전적으로 교육감이 결정토록 한 게 대표적이다.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 방침도 교육감 권한 강화 측면이 있다. 기존 승진 제도와 달리 주관이 개입되는 면접 방식이어서 교육감 입김이 강해진다는 설명이다.

◆ 자사고 폐지, '전선' 가를 이슈

단 진보교육감 숫자가 훨씬 많은 데다 문재인 정부까지 들어선 유리한 지형임에도 ‘원사이드 게임’이 될지는 미지수다. 의외로 4년 전 선거에서 17개 시·도 가운데 14곳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선출된 낙승 구도 재연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육감 선거는 ‘전선’을 형성하는 핵심 이슈가 승부를 가를 개연성이 높다. 일단 정당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교육감 후보들의 대중적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교육감이 실질적 권한을 갖게 된 ‘자사고 폐지’란 이슈 자체가 폭발력을 발휘할 조건이 충족된다. 오세목 자사고연합회장(중동고 교장)은 “자사고 폐지에 대한 교육감 후보들 입장이 이번 선거 중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전의 무상급식과 같은 전국적 이슈로 쟁점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사고 폐지 찬성 여론이 우세해도 선거전에 들어가면 ‘표심’은 정밀히 분석해야 한다. 타깃층의 문제다. 여론조사 대상은 이해관계가 걸려있지 않은 일반 국민이다. 적극 투표층은 다르다. 주로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이다. 1차 변수다. 학부모 내에서도 성향이 갈린다. 자사고·특수목적고 입시를 대비해온 학부모는 많지만 일반고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2차 변수다.

이들 변수를 조합하면 자사고 폐지로 피해를 입는 층은 명확하지만 이득을 보는 층은 불분명한, 성격이 달라진 ‘국지전’ 지형이 도출된다. 일반 여론조사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판이 깔리는 셈이다.

◆ 전교조 대정부투쟁 변수도 잠복

또 다른 축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슈다. 한 교육계 인사는 “문재인 정부가 법외노조 철회를 미루는 전교조 이슈도 잠복해 있다”고 했다. 법외노조 철회에 대한 ‘정부 의지와 속도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전교조가, 정부와 강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의 수를 배제할 수 없다. 진보교육감들에게는 역풍이 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전교조는 지난해 말 법외노조 철회를 걸고 연가투쟁을 벌였다.

진보 교육정책에 속하는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 방향에도 “전교조 출신을 교장으로 심기 위한 잘못된 제도”(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라는 공격이 만만찮다. 자칫 진보교육감이 우군 격인 전교조 ‘조직표’의 득실을 따져야 할 상황도 맞을 수 있다.

교육 분야에 대한 여론이 나쁘다는 점 역시 현직 교육감에 좋을 게 없는 징후다. 한국갤럽이 문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아 시행한 분야별 평가에서 교육 분야 지지율은 35%로 전체 국정 지지율(73%)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일반고와의 동시선발로 입시 불확실성이 커졌다. 학부모 불만이 상당하다”고 했다. 일반고 교장도 “평교사·전교조 출신 공모교장이 득세하면 학교 지휘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책 일관성을 우선시하는 교육 분야 특성이 묻어났다. “잦은 변화에 대한 반발로 선거 판세가 혼전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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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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