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왼쪽 두 번째)과 김성환 경영기획 총괄 부사장(첫 번째)이 1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단팍증권 인수계약식에 참석해 단팍증권 최대주주 등 관계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왼쪽 두 번째)과 김성환 경영기획 총괄 부사장(첫 번째)이 1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단팍증권 인수계약식에 참석해 단팍증권 최대주주 등 관계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한국투자증권이 인도네시아 단팍증권을 인수한다. 경영권 확보 및 유상증자에 약 400억원을 투입, 현지 70위(자기자본 기준)인 중형 증권사를 11위로 끌어올려 현지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로 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이른 시일 안에 5위권 증권사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자금 유출 없는 M&A

한투증권은 1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유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단팍증권 인수 계약을 맺었다. 한투증권은 단팍증권 지분 75%를 확보하기로 했고, 기존 주주들이 나머지 25%를 보유하며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투증권이 2014년 12월 자카르타에 현지사무소를 연 지 3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한투증권, 인도네시아 증권사 인수… 유상호 사장 "톱5로 키우겠다"
기존 주주들이 경영권을 매각해 확보한 자금을 단팍증권에 유상증자로 재투자하는 구조여서 눈길을 끈다. 기존 주주가 경영권을 판 뒤 자금을 챙겨 빠져나가는 일반적인 인수합병(M&A)과는 다르다.

기존 대주주는 한투증권으로부터 받은 지분 매각대금 전액을 단팍증권의 유상증자에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한투증권도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총 400억원이 단팍증권에 들어오게 된다. 자기자본 62억원으로 인도네시아 증권사 114곳 중 70위인 단팍증권은 단숨에 자기자본 462억원, 업계 순위 11위로 덩치를 키우게 된다.

유 사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불어난 자기자본에 한투증권의 노하우를 결합하면 빠른 속도로 인도네시아의 대형 증권사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주주들의 재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유 사장과 김성환 경영기획 총괄 부사장 등 경영진이 직접 협상에 나섰다.

단팍증권 주주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투증권의 성장 전략 및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최대주주로 있는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 등을 소개하며 설득했다.

유 사장은 “매도자 측이 한투증권과 협력하면 단팍증권의 기업가치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믿게 되면서 자금 회수에서 재투자로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주주들이 증권사뿐 아니라 은행 등 현지 금융투자업계에서 다양한 경영 경험이 있기 때문에 파트너로 적합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한국 주식거래 시스템 접목

한투증권은 내년 초 인도네시아 금융당국 승인 절차를 거쳐 단팍증권을 해외법인(가칭 Korea Investment&Securities Indonesia)으로 전환한 뒤 상반기부터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유 사장은 “증권사가 받는 수수료 기준으로 인도네시아는 베트남보다 훨씬 큰 시장”이라며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뿐 아니라 채권, 투자은행(IB) 등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말했다. 단팍증권의 실적(순영업수익 기준) 비중은 브로커리지 39%, 신용대출 39%, 투자은행(IB) 22%로 다변화돼 있다.

인도네시아 증권사 중 단팍증권의 국채 중개 순위는 10위권 안에 든다. 브로커리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한국형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도입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투증권은 2010년 인수한 베트남 증권사(현 KIS 베트남)를 당시 50위권에서 10위권으로 끌어올린 경험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유 사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산운용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현지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거나 새로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526조원(약 4820억달러·9월 말 기준)으로 베트남의 5배 이상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현지 10위권 증권사 중 9곳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 중 한투증권 외에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 등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KDB대우증권 시절 인수한 인도네시아 이트레이딩증권을 기반으로 한 미래에셋대우 인도네시아법인은 5위권이다.

이고운/박종서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