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리카도가 다시 살아온다면
200년 전 리카도가 다시 살아온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금 감면으로 월가와 지지자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분위기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뒤를 생각해보면 다른 그림이 펼쳐질 수 있다. 향후 10년간 세금 감면으로 인한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50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반면 같은 기간 합동조세위원회(JCT) 조사 결과 감세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은 평균 0.8%에 그친다.

더군다나 지금 미국이 이런 정도의 파격적인 재정정책을 써야 할 시기인가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미래에 날아올 청구서보다 당면한 선거 표심에 너무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가 지금 살아있다면 트럼프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리카도의 이론을 연구한 새 고전학파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는 ‘리카도의 등가정리’(조세가 감면되고 국채가 발행되더라도 이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므로 민간 소비가 전혀 증가하지 않는다)를 통해 조세 감면의 효과는 없다고 역설했다. 리카도 자신은 지주에 과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업인 노동자 계층에 부과하는 모든 종류의 세금을 반대했다.

트럼프의 감세정책이 자유무역의 장벽을 높이는 일종의 ‘지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리카도의 반응은 한층 단호해질 것이다. 트럼프의 감세정책엔 법인세 감면(35%에서 20%로 인하)뿐만 아니라 해외 이익잉여금에 대한 세율을 현행 35%에서 14.5%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이대로라면 2520억달러의 해외 잉여금을 쌓아둔 애플이 내야 할 세금이 786억달러에서 314억달러로 확 낮아진다. 애플은 해외에서 전체 매출의 75%를 벌어들인다. 미국이 자랑하는 보잉은 주문량의 75%를 북미권 밖에서 수주했으며 맥도날드 역시 전체 매출의 75% 이상을 해외에서 거두고 있다. 트럼프의 감세안은 해외에서 번 돈을 환수하는 것은 물론 해외투자를 미국으로 유턴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인도 중국 등 신흥국의 외국인 투자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자유무역 옹호자인 리카도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도 반대했을 것은 당연해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1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 서명했고, 다자무역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조정 절차를 우회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과 중국 등이 생산한 태양광 모듈에 최대 35%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권고안을 내놨다. 삼성과 LG 세탁기에 3년간 50%의 관세를 부과해달라는 월풀의 제안도 검토 중이다. 모두 자국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국가 간에 신뢰가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무형적 손실 역시 감내해야 할 것이다.

리카도는 자유무역이 희소한 자원(토지)에 따른 지대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1817년 출간한 저서 《정치경제와 조세 원리》에서 국가 간 분업과 자유 교역이 일어나는 원리로 ‘비교우위론’을 제시했다. 영국의 옷감과 포르투갈의 포도주 교역으로 대표되는 비교우위는 사람이나 국가나 기업이나 적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의미다.

물론 21세기는 그가 살던 세계와 너무 다르다. 리카도가 살았던 시기는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가 시작되면서 유럽 사회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던 때다. 그는 일관되게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보호주의를 추구하는 ‘곡물법’에 반대했다. 애덤 스미스처럼 ‘작은 정부’를 선호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통하는 그의 통찰은 충분히 되새길 가치가 있다. 시몬 에브네트 스위스 세인트갤런대 국제무역학 교수 등이 지난 6일 출간한 저서 《21세기 리카도의 비교우위의 타당성》이란 책에서 “국경 간 상품, 서비스, 인력, 투자, 생각의 이동 혜택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지는 지금 리카도의 일관된 자유무역 옹호와 보호무역주의 반대 주장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이 책은 다국적 기술기업의 등장으로 국경 간 공급망이 확대된 상황에서는 상호 기반의 개방시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