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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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직원의 요청으로 주52시간이 넘는 연장근로를 알음알음 허용해준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았다. 일부 직원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고 연장·야간수당까지 전부 챙겨줬지만 처벌은 피할 수 없었다.

영세 사업장일수록 주52시간제 위반을 피하기 위한 노무 수령 거부 시스템을 사전에 구비해 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근로자 원하고 수당 챙겨줘도 "벌금 500만원"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음료제조업체 사장 A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충남의 한 지역에서 150여명의 근로자를 두고 두 개의 사업장을 운영하는 A씨는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52시간제(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가 도입된 직후인 2021년 5월부터 이듬해 2022년 2월 경까지 근로자 154명에게 1주 52시간을 넘겨 연장근로를 시켰다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A씨는 강제로 일을 시키는 전형적인 '악덕 사업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사 결과 A씨는 모든 연장근로에 대해 철저하게 연장·야간근로 수당을 지급했다. 직원 몇 명은 간혹 1주 최대 70시간을 넘겨 일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근로자는 1주 53~60시간 수준이었으며 위반 기간도 1년 중 한두달 정도였다.

A씨의 법위반에는 이유가 있었다. 주 52시간제 도입된 직후인 2021년 주당 연장근로를 12시간 아래로 줄이자 직원들이 '수당이 줄었다'며 연이어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인구가 감소해 근로자가 부족한 충남 지역 특성상 A에게도 선택지는 적었다. 결국 주 52시간을 넘겨 연장근로를 시켰지만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A씨는 사건이 문제된 직후 곧바로 노사 합의로 주52시간제를 도입해 철저히 준수했지만 기소를 면할 수는 없었다.

법원은 A가 근로시간에 대한 수당을 모두 지급했다는 점을 들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주52시간제 실시 초반에 초과 근무를 못한 직원들이 수당 문제로 퇴사한 점, 공장이 있는 지역의 노동 인구가 적어 퇴사자가 발생할 경우 구인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업주와 근로자 간 합의가 있어도 원칙적으로 1주 연장근로가 12시간을 넘길 경우 사업주에게는 형사처벌이 예정돼 있다.

이에 대해 한 공인노무사는 "특히 투잡을 뛰기 어려운 비전문(E-9)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제조업 사업장에서 이런 일이 정말 많다"라며 "직원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주52시간을 넘겨 일하겠다며 사업주를 압박하지만, 못이기는 척 이런 요구를 들어줬다가는 본인이 형사처벌 받을 수 있으니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서 소득을 보전하고 싶은 근로자들에게는 다소 경직된 규제로 느껴질 수 있지만, 현행 법상으로는 철저히 유연근로제, 탄력근로제를 활용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주52시간제 위반 않으려면 '노무수령 거부 시스템' 구비 중요

반면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지지 않은 영세사업장의 경우엔 되레 '도둑 연장근로'가 종종 문제된다.

영세사업장은 사업장 출입 기록 등을 근거로 근로시간 확인 시스템은 어설프게 갖춰진 반면, 근로시간 통제 시스템은 미비한 경우가 많다.

이때문에 수당을 목적으로 빈번하게 야근하거나 과도하게 근로시간을 늘리려 주말에 출근하는 등 근로자들의 '도둑 연장근로'에는 취약한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자발적' 연장 근로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고용부 행정해석은 사업주의 요청 없이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연장근로를 하면 임금 지급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본다. 사용자의 요구가 없었지만 성과를 더 내기 위해 연장근로를 한 사례에서 연장근로수당을 줄 필요가 없다는 질의회시도 있다.

하지만 '자발적'의 판단 기준이 애매한 데다, 자칫 앞서 본 것처럼 근로시간이 과다 산정될 경우 사업주가 주52시간제 위반으로 추가적 임금 부담은 물론 형사처벌 리스크를 지게 될 수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사전에 철저한 '노무수령 거부' 시스템을 갖추는 게 좋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사내 게시판 등 근로자가 볼 수 있는 장소에 소정근로시간 외 연장근로 제한을 명시하거나, 취업규칙 등에 회사의 승인 없는 연장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확하게 담아 두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