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카페테리아와 사랑채서 엿본 집단지성
7~8월 휴가철도 어느덧 끝나가고 있다. 휴가 기간 많은 사람이 국내외 여러 관광지에서 잠시나마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렀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 과정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유럽의 카페테리아와 우리네 전통마을의 사랑채에서 ‘집단지성’의 키워드를 읽어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유럽 각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를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이 유럽 각지로 확장된 요인으로 설명한다. 1683년 당시 런던에만도 3000여 개 카페테리아가 있었고 선술집의 수를 능가했다고 한다. 이들 대로변이나 노천에 있는 카페는 신분과 직업을 달리하는 다양한 계층이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자유로운 교류의 장소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매듭은 당연히 지적 관심사였다. 그리고 카페에서의 담론은 집단지성을 이뤄 르네상스 이후에도 지속적인 문예 부흥을 이끌어냈으며 여러 기술자와 공학자의 지식을 융합시켜 산업혁명을 유도했다.

우리 역사에서도 담론 문화를 꽃피웠던 공간이 있었다. 전통마을이나 한옥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채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사랑채를 통해 형성된 담론 문화는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사랑채를 이용하는 방식이 서양의 카페테리아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카페테리아와 사랑채서 엿본 집단지성
사랑채는 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손님들과 시작(詩作), 담론, 주연(酒宴)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노천에 있어 외부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카페와 달리 가정집 가장 안쪽에 있던 사랑채는 철저히 주인의 통제 아래 참석자가 결정됐다. 조선의 가부장적 체제 속에서 사대부의 사랑은 주로 문벌과 학통이 비슷한, 다시 말해 자신과 비슷한 신분의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만 단골로 출입하던 공간이었다. 따라서 사랑채에서 이뤄진 담론은 철저히 주인의 주된 관심사에 부합하는 인사들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카페테리아와 같은 문화적 충격과 신선한 자극을 가져다주는 담론을 기대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 전 네이처지에 위키피디아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정확도를 비교한 연구가 게재돼 화제가 됐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오류나 누락이 162건, 브리태니커에서는 123건이 확인됐다. 이런 연구결과는 집단지성이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수단이자 정확도를 확보하는 데도 유의미한 수단임을 확인시켜줬다.

이제 집단지성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대두되고 있다. 더 나아가 4차 산업혁명으로 구현될 초연결사회는 그야말로 집단지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 아직도 사랑채가 남아 있어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