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문재인 복지'의 원천, 기업들이 떨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의 이익과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고용부 장관에게 당부한 말이다. 부처의 설립 목적에 충실해 달라는 뜻일 것이다. 기업정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산업의 관점에서…”라는 당부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나는 친(親)노동이자 친기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계와 기업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다. 현대·기아자동차 한국GM 등 주요 기업 노동조합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연례 파업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고,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사드 철회’ 따위를 구호로 내건 정치시위를 주도할 정도로 여유가 넘쳐난다. 기업들은 폭풍 전야 분위기다. 전담 부처까지 신설해서 육성하고 지원해 주겠다는 중소기업들의 한숨 소리가 더 크다. 정부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이어 일률적인 근로시간 단축까지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섬유업계 기업인들은 지난주 산업부 장관이 주재한 간담회에서 “국내 공장을 해외로 옮기거나 아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최저임금과 주당 52시간 근로시간은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며 “각 기업 노사가 협상해 결정하도록 자율에 맡겨 달라”는 요청도 했다. 산업부 장관은 “공장 해외 이전과 축소를 자제하고 국내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했을 뿐,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대통령이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구현할 과제로 명시한 ‘어명(御命) 정책’이기 때문이다. “구멍가게만 꾸려 봤어도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인상이 불가능함을 알 것이다. 이 정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결정하기 전에 우리들 얘기에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기업인은 이렇게 울분을 터뜨렸다.

자동차업계는 지난주 한계치를 넘어선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면서 ‘공장 해외 이전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부랴부랴 취소하는 곤욕을 치렀다. “한국 완성차업계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12%로, 제조업의 정상적 경영지표 한계선인 10%를 넘어섰다. 지금도 다른 나라보다 인건비 부담이 큰데, 통상임금에 따른 비용까지 더해질 경우 경쟁력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는 호소 끝에 나온 말이었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에 기업들이 공장 문을 닫거나 해외로 떠나겠다는 말은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금기어(禁忌語)로 삼고 싶을 것이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세금 납부를 통해 나라곳간을 채우는 것도 기업들 몫이다. 올 상반기 정부가 거둔 세금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조원이나 늘어나는 ‘세수 풍년’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업 실적이 향상돼 법인세 등의 납부액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정부는 두둑해진 곳간을 각종 복지정책을 확충하는 데 아낌없이 쓰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간 30조원이 넘게 들어갈 것이라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비롯해 22조원 가까이 필요한 기초연금 인상, 10조원이 더 소요될 기초수급자 확대 방침 등을 쏟아냈다. 취임 100일 동안 발표한 복지정책 소요 재정만 100조원에 육박한다. 늘어난 세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글로벌 추세를 거슬러가며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을 결정했다.

기업들 한숨 나올 풍경만 잔뜩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복지 슬로건으로 내건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돈줄’인 기업들을 이런 식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기업은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도 버텨낼 수 있는 무쇠팔 마당쇠가 아니다. 언제까지고 승승장구할 것 같던 조선과 해운업 회사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지금은 자동차업계가 비슷한 운명의 전조(前兆)를 보이고 있다. 아니,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신음 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산업의 관점’에 눈감은 탓에 이런 현실이 보이지 않는 걸까.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