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99.98% 실패에서 자유로운 곳
“위험은 언제나 옳다(Risks always pay off).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서는 안 되는지 배우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방문한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소크연구소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연구소 설립자이자 세계 최초의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인 조나스 소크 박사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1960년 세워진 이 연구소는 알츠하이머, 노화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노화의 원인인 텔로미어(DNA 양 끝에 붙어 있는 반복 염기서열)를 밝혀낸 엘리자베스 블랙번 소크연구소장을 비롯 이곳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만 여섯 명이다.

그 배경에는 실패에 관대하고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도록 지원하는 연구 환경이 뒷받침됐다. 소크연구소에는 지적 자유, 호기심 장려, 협력 촉진 등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과학자들이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연구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연구소 건물도 창의성과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유명 건축가 루이 칸이 설계한 소크연구소는 실험실 간 벽과 문을 없애 연구원들의 공동 작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동료와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데서 탄생한다는 이유에서다.

놀라웠던 것은 이 연구소가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은 최소한으로 하고 오로지 순수과학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크리스티나 그리판티니 소크연구소 매니저는 “기업은 당장 상업화할 수 있는 결과물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연구를 방해할 수 있다”며 “시장성이 있는 분야로 연구가 편중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당장 돈이 되는 연구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연구 풍토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국내 제약업계가 성공 확률 0.02%의 신약 개발에 목숨을 걸고 있을 때 소크연구소는 질병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희박한 가능성을 좇다 보면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기 쉽다. 하지만 99.98%의 실패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유롭게 도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샌디에이고=전예진 바이오헬스부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