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만으론 갭투자 못 막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학습효과’와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갭투자’가 이번주 초 발표될 정부대책의 약발을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아파트값은 규제가 나왔을 때 일시적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면서 저점을 높여갔다. 이런 현상이 재연될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계속 버티면 집값이 안정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전세 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갭투자는 대출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아 대책 발표 이후에도 집값을 교란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0년 전처럼 다시 오를 것”

"대출규제만으론 갭투자 못 막는다"
이번주 정부는 부동산시장 과열과 관련한 종합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노무현 정부 때처럼 대책이 나오면 집값이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올라가는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서울과 신도시 집값이 오르는 근본적 이유는 양질의 주택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택지 공급까지 적어도 3년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집값은 언제든 들썩일 수 있다”고 말했다. D건설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노무현 정부를 겪으며 수요억제 일변도 정책은 반드시 중장기적인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걸 눈치챘다”며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섣불리 수요억제책을 내놓으면 오히려 투자자의 구매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택지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고 나서야 집값이 잡혔다고 설명했다. 시기적으로 2007년 1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가 나온 뒤 집값이 떨어진 탓에 대출규제가 집값 안정의 일등공신이란 분석도 있지만 집값 안정의 근본적 원인은 2기 신도시 등에서 택지 공급이 충분히 이뤄졌기 때문이란 시각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은 신규 택지 공급이 없고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오히려 주택 수가 줄기 때문에 수요를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노무현 정부 때 섣불리 재건축 규제에 들어갔다가 집값 거품을 키운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중장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공급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갭투자 막으려면 보유세 등 강화해야”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갭투자도 부동산 대책의 약발을 좌우할 변수로 꼽히고 있다. 갭투자란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부동산을 전세를 끼고 매입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 기법이다. 금융회사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은 서울 성북·노원·도봉구 등에서 아파트 한 채가 통째로 갭투자로 활용되는 사례마저 나오고 있다. 투자금이 적게는 수백만원에 불과해 대학생마저 갭투자에 나서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LTV DTI 등 대출규제를 강화해도 갭투자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갭투자는 기본적으로 은행 대출이 아니라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대출을 죄면 전세시장이 더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갭투자자는 통상 전세 보증금을 최대한 올려 투자금을 최소화하는 까닭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위원은 “갭투자는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은행 창구가 막히면 전세자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유세 및 양도소득세 강화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이 떨어지면 ‘깡통 전세’(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 등 서민주거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갭투자를 억제하기 위해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갭투자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적은 주택을 전세를 끼고 산 뒤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다. 예를 들어 매매가격 3억원짜리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2억7000만원이라면 3000만원만 들여 집을 사는 것이다. 소액 투자가 가능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