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무게 빼라"…화학기업, 연비경쟁 나섰다
석유화학업체들이 ‘자동차 연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철강만큼 강하지만 무게는 훨씬 가벼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이 ‘금속의 영역’이었던 기계 부품과 내·외장재 분야를 속속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볍고 단단한 섬유와 플라스틱, 타이어 효율을 높여주는 고무 등이 각광을 받으면서 화학업체들의 사업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 무게를 10% 줄이면 연비는 6~8%, 가속력은 8%가량 올라간다”며 “국내외 자동차업체들이 자동차 경량화에 사활을 걸면서 화학업체들이 새로운 블루오션을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

화학업체들은 무게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질감, 친환경성, 내화학성 등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PETG·ABS 복합재로 국내 자동차 부품시장 진출을 발표한 SK케미칼이 대표적이다. PETG·ABS 복합재는 SK케미칼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상용화에 성공한 복합소재다. 조직이 견고해 외부 화학성분 침투가 어렵고 기존 제품에 비해 내화학성이 두 배 이상 뛰어나다. 한태근 SK케미칼 EP사업팀장은 “섭씨 80~110도의 열을 견딜 수 있는 데다 내화학성이 높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자동차 운전석 내장재는 방향제, 선크림 등과 같은 화학성분 접촉이 늘면서 내화학성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형 국산 중·대형 차량 4종에 스티어링휠(핸들), 스위치 패널, 도어 트림 등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롯데첨단소재는 무도장 내스크래치 수지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무도장 내스크래치 수지는 플라스틱 소재에 도장 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금속처럼 고급스러운 질감을 낼 수 있도록 만든 소재다. 플라스틱 소재가 차량 내장재로 쓰일 때는 외부의 충격, 빛, 습기 등으로부터 표면을 보호하고, 고급스러운 금속 질감을 내기 위해 도장 공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환경에 유해한 재료가 사용되고, 부품 재활용이 어려워진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장 공정 없이도 공정을 거친 것 같은 효과를 내는 소재를 개발했다. 2015년 포드 몬데오 모델 인테리어 디자인(사진)에 사용되면서 같은 해 ‘SPE 자동차 어워드’에서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 소재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LG화학은 나일론이라고도 불리는 폴리아마이드를 기반으로 한 합성 소재 LUMID로 자동차 구조 부문의 부품들을 대체하고 있다. 내열성, 내충격성, 내화학성 등이 우수하고 기계적 강성이 높아 자동차 엔진 덮개, 라디에이터 탱크, 파워서킷브레이커 등으로 사용된다.
"차 무게 빼라"…화학기업, 연비경쟁 나섰다
◆섬유·플라스틱 ‘이종교배’도

플라스틱 소재와 섬유의 이종교배로 EP는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플라스틱에 탄소섬유·유리섬유 등을 섞어 강도를 더 높인 ‘콤퍼짓’이라고 하는 복합 소재가 뜨고 있어서다. 콤퍼짓은 선루프·범퍼빔·의자 프레임 등 크기가 더 큰 자동차 부품으로 쓰일 수 있는 신소재다.

한화첨단소재는 GMT(강화 열가소성 플라스틱)라는 콤퍼짓을 주력 제품으로 키워 글로벌 시장의 70%를 점유 중이다. 폴리프로필렌 수지(PP)에 유리섬유를 더해 강도는 금속과 비슷하지만 무게는 20~25% 덜 나간다. 최근엔 이 콤퍼짓 안에 철심을 넣어 고속 충돌 때도 끊어지지 않는 범퍼나 방탄섬유를 혼합해 충격 흡수율을 높인 범퍼 등 ‘하이브리드 제품’도 양산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BMW,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도요타 등이 고객사다.

코오롱플라스틱은 열·마모에 강해 금속과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EP인 POM(폴리옥시메틸렌)을 생산하는 유일한 한국 기업이다. 연 5만7000t을 생산하고 있는 가운데 작년 4월부터 바스프와 합작해 경북 김천에 연산 7만t 규모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또 타이어 고무를 만드는 업체들은 최근 타이어의 회전 저항력을 줄여 연비를 기존 고무 대비 10%까지 줄여주는 고기능성 합성 고무 SSBR 소재로 경쟁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과 LG화학이 각각 6만여t을 생산 중인 시장에 롯데케미칼이 올 상반기 공장 준공을 앞두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친환경 타이어 수요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데다 미국·중국이 타이어 효율 등급 표시제를 도입할 경우 시장 규모는 훨씬 빠르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