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도입을 추진 중인 ‘국경조정세(Border-Adjustment Tax·BAT)’가 미국 안팎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경세(Border Tax)’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개념은 아주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 전 멕시코를 대상으로 35%, 중국을 대상으로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던 것이 국경세다. 국경조정세는 법인세제다. 법인세를 매길 때 수출 판매로 인한 이익은 아예 세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수입 판매를 하는 경우엔 수입비용을 공제하지 않고 과세한다는 개념이다.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들은 “말도 안 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독일 등은 미국이 국경조정세를 도입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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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인세제 30년 만에 손질한다는데

국경조정세의 원래 이름은 ‘소비지 기반 현금흐름 과세(DBCFT)’다. 작년 6월 공화당 소속 케빈 브래디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장과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이 발의했다. 1997년부터 앨런 아우어버크 UC버클리 교수가 주장해온 내용에 살을 붙였다. 처음엔 주목을 덜 받았으나 지난 1월 트럼프 정부 인수위원들이 라이언 의장 등과 만나 논의한 게 알려지자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미국 법인세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고 법인세율이 무려 39.1%(연방정부 세율 35%+주정부 세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외에서 발생한 수익에도 미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세계주의’ 과세 체제를 택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의 법인세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1%로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기업들이 미국 밖에서 발생한 이익을 들여오지 않거나 로열티 등 명목으로 빼돌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 150여개국이 도입한 부가가치세가 미국엔 없는 것도 문제다. 부가세는 소비지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세금이어서 수출 시 종전 단계에서 낸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미국에 물건을 파는 나라는 부가세를 면제받으니 수출보조금을 받는 셈이고 반대로 미국 기업이 수출할 때는 안에서 환급받은 것도 없이 밖에선 부가세를 내야 하니 불평등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DBCFT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형된 부가세’를 도입해 기업 법인세를 대신하자는 구상이다. 통상 법인세는 기업이 물건을 판 대금에서 원자재·부품 구입비용, 각종 판매관리비 등을 제하고 남은 이익에 일정 비율을 곱해 물린다. 그걸 기업의 순현금흐름(현금수입-현금지출)에 대한 과세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기업회계상 부가세와 거의 동일한 효과를 낸다. 다만 부가세 계산 시 포함되지 않는 임금을 추가로 빼준다. 공화당의 하원안은 35%인 법인세율을 20%의 국경조정세로 대폭 낮추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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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엇갈리는 찬반

이렇게 되면 미국 기업도 수출할 때 세금이 면제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반대로 수입기업엔 무거운 세금을 물려 수입을 억제할 수 있다. 또 세계주의 과세체제를 자연스레 영토주의(해당국에서 발생한 이익에만 과세)로 바꿀 수 있고, 기업이 이익을 해외에 쟁여놓게 만드는 탈세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국내 투자 시 발생하는 현금 지출을 단번에 비용 처리하게 함으로써 투자도 활성화할 수 있다. 1986년 이후 30여년 만에 최대 세제개혁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보잉이나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수출기업은 적극 지지하고 나섰지만 월마트나 베스트바이 등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은 반대하고 있다. 수입비용을 공제받지 못하고 판매금액 전액(판매관리비 등은 제외)에 대해 20% 세금을 물면 이익이 대폭 감소할 것이 뻔해서다.

예컨대 90달러에 물건을 수입해 100달러에 파는 경우 판매대금(100달러)의 20%를 세금으로 내면 배(이익)보다 배꼽(세금)이 더 커진다. 수입가격을 올려 대응하면 미국 내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크게 감소시킨다.

국경조정세가 도입되는 순간 달러화 가치가 딱 그만큼 높아져 효과가 상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원작자’ 아우어버크 교수는 달러 가치가 25% 높아질 것으로 점쳤다. 이를 감안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은 하나마나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아우어버크 교수는 “그렇더라도 탈세 구멍을 막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달러가치가 상승하더라도 수입에서 발생하는 세수가 수출에서 감소하는 세입보다 크기 때문에 10년간 1조달러 이상 추가 세수가 확보될 것”이라며 “그 비용은 미국에 수출하는 외국 기업이 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달러가치 상승폭이 그보단 작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미국 수출입 외에 달러가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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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아직도 유보적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조정세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취임 직전엔 “너무 복잡하다”고 했으나 이후에는 다소 긍정적인 톤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걸림돌이 많다. 공화당 상원 내에도 반대의견이 적지 않다. 미국이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WTO와의 한판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WTO는 기업 법인세제로 부가세를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