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동북아 셰일가스 허브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많이 보고 있는 중국 일본 독일 한국 등은 셰일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이 내정자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초 한 말이다. 작년 대미 무역흑자가 232억달러인 한국으로서는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은 미국이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 세 가지 요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원유 등 에너지 수입은 실현성이 가장 높은 대안이다. 기존 수입물량 가운데 일부를 미국산으로 돌리면 된다. 지난해 원유수입액은 443억달러로 사우디아라비아산이 가장 많았고 쿠웨이트 이란 순이었다. 액화천연가스(LNG)는 119억달러로 카타르 인도네시아 오만 등에서 들여왔다. 이런 물량 중 일부를 미국에서 수입하며 생색도 낼 수 있을 것이다.

대미 무역흑자 줄일 대안으로

사실 트럼프 정부가 선언한 ‘미국 우선(America first) 에너지 정책’은 세계 경제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충격파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자립과 수출을 골자로 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은 세계 정책의 중심을 앞마당인 태평양으로 옮기고 있다. 중동의 유전지역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 대신 미국산 원유와 가스를 실어나를 항로가 훨씬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나 대만과의 관계 개선 시도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이렇게 자신있게 나선 배경에 셰일가스가 있다. 이미 100여년 전 발견된 셰일퇴적층의 가스를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게 미국이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우리는 100년을 쓰고도 남을 가스를 발견했다”고 했던 바로 그 셰일가스 말이다. 셰일 덕분에 미국은 최대 산유국이라는 뜻으로 ‘사우디아메리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제 그 미국이 전 세계에 미국산 에너지를 사가라고 압박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부담스러워 하지만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동북아에 셰일가스 수출허브가 있어야 한다면 단연 한국이 최적지다. 안보무기인 기름과 가스를 미국이 중국에 직접 공급할 가능성은 낮다. 일본은 가스허브가 되기엔 인프라 구축 비용이 한국의 2.5배가 넘는다.

싱가포르 모델 이상의 잠재력

그러니 ‘동북아 셰일가스 허브’가 되겠다는 비전이 필요하다. 사실 정부도 준비는 해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5년 12월 ‘12차 천연가스 수급계획’에서 가스공사의 제5기지를 민간과 협력해 ‘아시아 LNG허브기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여수 당진 보령 등 세 곳에서 민간업체들이 사업준비를 마친 상태다.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시작하기만 해도 우리는 ‘동북아 셰일가스 허브’로서의 브랜드를 선점할 수 있고 트럼프 정부에도 강력한 신호(signal)를 보낼 수 있다.

진행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입지 조사가 3월에나 끝나고 이후엔 다시 예비타당성 조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속도로는 안된다. 탱크 하나를 짓는 데도 40개월이 넘고 LNG허브터미널은 최소 6년짜리 프로젝트다. 당장 시작해야 옳다. 특히 소위 대선주자들은 싱가포르 석유단지 이상의 가치가 있는 대형 프로젝트로 연구해야 마땅하다. 국민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와 먹거리를 주고 싶다면 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