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해외파병, 세계인의 마음을 훔치는 무기
2007년 11월26일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은 캔자스대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청중에게 말했다. 수렁에 빠진 이라크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해 미국이 필요한 것을 솔직히 밝히고 도움을 청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군비 확장과 병력 지원도 아니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는 전쟁 승리의 요건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방예산보다 세계인의 호감을 끌어내기 위한 국무부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전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공감을 세계인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한다면 전쟁은 오히려 역사에서 부끄러운 대목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겐다즈라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이름부터 시작해서, 냉동차 바깥 장식만 보면 완전히 덴마크 제품이다. 그러나 이 아이스크림은 미국 필스버리사 제품으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시작한 후 줄곧 뉴저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자사의 컨테이너 바깥에 덴마크 지도를 인쇄한 뒤 코펜하겐을 의도적으로 표시했다.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낙농 강국인 덴마크를 연상시켜 팔아먹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만큼 국가 호감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중국 가전제품인 하이얼은 세계시장에서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상당 부분 이름 덕이다. 독일어처럼 들리는 이름 덕분에 서구시장에서 마치 독일제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독일의 힘이다. 사람들은 일제나 독일제가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상당히 비싼 값을 지불한다. 국가 호감도가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가에 대한 호감도는 소비자가 특정 국가 상품을 구매할 시간과 노력, 걱정을 간단하게 해결해 준다. 실제로 사람들은 일정한 방식으로 국가를 인식하고 또 개별 국가는 나름대로 품격과 특성을 가진다. 사람들의 인식이 한 국가의 외교, 투자, 방문, 스포츠, 정치, 무역, 문화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같은 국가 호감도 인식제고를 위해 최근 들어 해외 파병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남수단의 한빛부대, 레바논의 동명부대 등 해외파병 부대의 놀랄 만한 활약상은 이제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파병과 관련된 미약한 법적 근거는 이 같은 효율적인 국익 제고, 국가 이미지 제고 활동에 발목을 잡고 있다. 동명, 한빛부대의 경우 ‘UNPKO 법’에서 규정하고 있으나 청해부대, 아크부대는 희미한 법적 근거로 인해 사사건건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신규 파병 또는 연장 시 제기되는 법적 근거 논란은 여전히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인 상황으로 인해 정부의 세련되고도 효율적인 외교안보적 과제는 실로 막중하다. 절대 빈국에서 성공모델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리고 그들의 호감과 지지를 얻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 반대편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방법 중의 하나인 해외 파병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의 성공과 영향력은 부드러운 힘(soft power)과 강한 힘(hard power) 간의 균형으로 이뤄져 있다고 조지프 나이가 말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가 강력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라시아 대륙에 달려 있는 이 작은 나라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 중의 하나는 바로 해외 파병이다.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 국격에 걸맞은 평화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파병 법제 정비가 하루바삐 이뤄져야겠다. 국력에 걸맞은 해외 파병이야말로 외교안보 정책의 가장 지혜로운 방안이기 때문이다.

김동률 <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국방정책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