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롯데의 생환자들에게 축하를…
롯데 수사가 곧 종결된다고 한다. 초여름에 시작된 수사였다. 10월 만추가 이미 깊었다. 박근혜 정부 초기의 채동욱 검찰 총장 시대를 방불케 하며 시작됐다. 수사관 240여명이 롯데 그룹의 각급 지휘본부 17곳에 들이닥쳐, 1톤 트럭 17대 분량의 서류를 압수하고 경영자 24명을 출국금지하면서 막이 올랐다. 수많은 휴대폰이 압수됐다. 기세등등한 검찰은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사를 돌아가면서 크고 작은 피의 사실들을 풀어댔고 그때마다 언론들은 열심히 부패한 재벌에 대한, 때로는 황당한 기사로까지 지면을 도배질했다.

부도덕한 재벌의 전모가 폭로되면서 그룹이 공중분해될 것 같은 급박한 나날이 이어졌다. 루머도 기승을 부렸다. 경영권 분쟁 중이던 신동주 측에서 검찰에 넘겨준 자료만으로도 롯데는 쑥대밭이 될 것이라든가, 이 사건이 이명박 정부의 비리로 확대될 것이라든가, 롯데월드타워를 둘러싼 로비가 심각한 정권적 스캔들로 발전할 것이라는 등이었다. 수많은 제보가 쏟아진다고도 했다. 재벌은 조사하면 무언가 나오고 두들겨 패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집단이라는 이미지는 이번에도 어김이 없었다. 더구나 롯데는 부패 고리에 취약한 업종이었다.

무엇보다 유통산업이었다. 이해관계자가 많고 설킬 수밖에 없었다. 롯데백화점 입점 브랜드가 1200개, 면세점은 900개에 이를 정도였다. 롯데마트 상품 수는 3만개에 이른다. 이 3만개 상품을 다루는 업체들과 경쟁 기업을 합치면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은 간단히 10만개를 넘어선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통산업에 대한 불만과 질시와 원망은 거의 모든 내수 기업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들은 점포의 위치를 다투고, 직원 파견을 다투고, 입점료를 다투고, 판촉비를 다투고, 상품 진열을 다투는 일상적 분쟁 속에서 살아간다. 아니 분쟁과 갈등이 ‘업의 본질’인 업이 바로 유통업이다. 유통산업은 인생고에 비해 급여가 적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바로 그것 때문에 롯데는 도저히 부패의 유혹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와 걱정이 많았다.

바로 그것 때문에 경제에 대해 조금 안다 하는 사람일수록 검찰 수사에 가장 취약한 그룹이 바로 롯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해왔다. 평소에도 투서가 날아다니고,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민원이 쌓였다. 검찰은 수사 기간 동안 27개 롯데 계열사의 간부 400여명을 약 730여회에 걸쳐 불러 조사했다. 15개 계열사에 대해서는 주요 간부의 사무실을 12번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그들 중 30여명은 자택수색까지 받았다. 가족들은 낯선 자들의 거친 방문을 받았고, 그 소식에 집으로 뛰어온 자녀들은 비위의 증거를 뒤지는 수사관들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분노와 두려움에 떠는 그들의 부모와 함께 지켜봐야 했다.

수사 결과는 적지않은 놀라움이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을 필두로 오너 일가 5명이 기소되기는 했지만 전문경영자 중 지금까지 기소된 사람은 2명, 그것도 개인 비리로 기소된 사람은 1명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물론 검찰이 개인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관용의 선을 그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살한 고(故) 이인원 부회장의 말마따나, 비자금도 롯데 건설에서 10여년 전의 일로 300억원이 발견되었을 뿐 더는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은 오너들에 대한 과도한 보수를 ‘횡령’이라고 불렀지만 오너들은 그 돈의 상당 부분을 회사 금고에 넣어두었다가 정치자금 등 필요한 비자금으로 써왔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래서 “회사 차원의 비자금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룹은 더 단단해졌다.

롯데 수사는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대부분 임원은 생환자 명단에 포함됐다. 압수 수색도, 서류 대조도, 통화기록 조회도 모두 견뎌냈다. 잘 견뎌냈다는 자부심이 저승길을 들락거린 임원들의 얼굴에 번지고 있다. 검찰 수사는 성공이었다. 롯데그룹이 그렇게 썩지는 않았다는 것이 증명됐으니까. 신동빈 회장도 다툼의 여지가 있는 혐의만 받았다. 이제 곧 수사가 종료된다. 생환자들에게 축하의 악수라도 건네야겠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