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놓은 당상' 이라는 거래소 이사장
3년 전 이맘때도 똑같았다. 2013년 9월26일 한국거래소 주주총회에서 경제관료 출신인 최경수 후보가 80.66%의 지지율로 거래소 이사장에 선임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몸담았다는 이력에 힘입어 이사장 내정설이 돌던 최 후보는 거래소에 무난히 안착했다.

이달 말 선출되는 차기 거래소 이사장직을 놓고서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이번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으로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과 대학 동기(서울대 82학번)라는 학연이 부각되고 있는 정찬우 씨가 내정설의 주인공이다.

정 전 부위원장의 거래소 ‘낙하산’ 인사설이 급부상한 것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연임이 유력시되던 최경수 현 이사장이 갑작스럽게 후보 등록을 포기하면서부터다. 거래소 지주회사화를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통과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온 최 이사장이 ‘윗선’의 낙점을 받은 ‘실세’ 정 전 부위원장의 후보 등록 사실을 확인하자 곧바로 연임 의사를 접었다는 얘기가 증권가에 파다하게 퍼졌다. 과거와 달리 올해는 차기 이사장 후보 공모기간이 1주일에 불과했고 정 전 부위원장 외에 지원 후보가 누구인지도 공개되지 않아 거래소 이사장직은 정 후보에게 ‘떼놓은 당상’이라는 수군거림도 거세졌다.

한국거래소는 36개 증권회사와 선물회사가 주주로 구성된 민간회사지만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거래 등 공적인 성격의 역할을 수행하는 까닭에 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왔다. 9명으로 구성된 이사장후보추천위원회도 대학교수가 주축인 5명의 공익대표 비상임이사가 주를 이루고 증권업계 인사는 1~2명에 불과하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2005년 옛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등이 합쳐져 통합 거래소가 출범한 이후 선임된 4명의 이사장 중 키움증권 출신인 김봉수 전 이사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료 출신이었다. 일각에선 오는 30일 주주총회에서 예상 밖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도 하지만 ‘이론적 가능성’에 불과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제학 교수(전남대) 출신으로 3년간 금융위에 몸담기도 한 정 후보에게 통상 비전문가라는 뜻을 겸하는 ‘낙하산’ 딱지를 붙이는 것은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13위 규모(시가총액 기준) 주식시장을 주관하는 거래소 수장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낙점설’과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거래소는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업계 전반의 글로벌 역량을 고양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정 후보는 바로 이 대목에서 자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주주사의 의중은 ‘글쎄’다. 유례 없는 초저금리 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 선도적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때 금융계 최고 실세를 자임하던 사람이 고작 거래소 이사장직을 노리느냐”는 비아냥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느 낙하산 인사들이 그랬듯이 정 후보도 스스로 눈과 귀를 막고 30일까지 버틸 심산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원하던 자리를 꿰찼다. 속으로는 못마땅해하면서 겉으로는 찬성표를 던지기 일쑤인 업계도 비겁하긴 마찬가지다.

우연찮게도 차기 거래소 이사장이 선출되는 날은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의지에 힘입어 입법에 탄력을 받았던 ‘김영란법’이 시행 사흘째를 맞는 날이다. 또다시 낙하산을 받아들일 거래소 직원들의 표정이 벌써 눈에 선하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