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수잔 스터트버그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회장과 KPMG, 스테이트뱅크, JP모간, 켈로그의 여성 이사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였다. WCD 한국 지부 창립일이었다.

WCD는 전 세계 70여개 지부, 1만여개 기업에서 이사로 활동하는 여성 회원 3500여명으로 구성된 글로벌 조직이다. 이들 회원이 일하는 기업의 시가총액을 다 합하면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할 정도인데 한국이 74번째 지부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회장이 공동대표를 맡았고 이행희 한국코닝 대표, 모진 풀무원다논 대표 등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약 30명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몇 년 전 한 대표가 WCD로부터 한국 지부 설립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 지부는 이사회 이사가 되기 위한 교육 및 여성인재 데이터베이스(DB) 운영과 기업경영 관련 경험 및 아이디어 공유를 위한 교류를 하게 된다.

한국 상장기업 이사회 여성 이사의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포천 200대 기업 중 상위그룹에 속하는 기업들의 경우 이사회의 여성 이사 비율이 평균 43.14%에 이르는 것을 보면 격차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도 여성 이사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 몇몇 기업들이 여성인재 양성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몇 년 전 한국 여성정보인협회 창립 22주년 기념포럼에서 글로벌 기업인 한국IBM 셜리 위 추이 전 사장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인재의 다양성이 최고의 인재 및 조직의 혁신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신념을 갖고 회사 방침인 ‘여성 다양성(women diversity)’을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IBM은 회사에 여성협의회라는 조직을 두고 여성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롯데그룹은 2013년에 ‘다양성 헌장’을 선포했고, 올해는 전 계열사에 다양성위원회를 조직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업문화 확립에 우수한 실적을 낸 계열사는 매년 다양성 선도회사로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 다양성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추진된 세부적인 제도는 함께 공유함으로써 다양성 문화 확산을 이끌고 있다. 다양성의 핵심이 여성 인재 확대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독일 튀빙겐대 연구(2012)처럼 여성 이사의 비율이 높은 글로벌 기업들은 경영 투명성과 재무 성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성원의 다양성, 여성의 힘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와 함께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톰 피터스도 “의사결정집단의 인구학적 구성이 시장을 닮지 않을 경우 멍청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여성들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은 모두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실행 가능한 조언을 얻게 해준다. 뜻을 같이하는 여성들이 모여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머리를 맞댄 끝에 결실을 보게 돼 뿌듯하다. 74번째 지각 출범하는 한국지부지만 알차고 내실 있게 여성 경영인과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복실 < 전 여성가족부 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