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해 나갈 것"

일본 정부는 9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전날 영상메시지를 통해 생전퇴위 의사를 밝힘에 따라 내달 전문가회의를 구성하고 대책 논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행 왕위 계승 등의 내용이 담긴 '황실전범(皇室典範)'에는 중도 퇴진 규정이 없고, 생전퇴위를 위해서는 검토해야 할 과제가 많은 만큼 서둘러 결론을 내지 않고 신중을 기해 논의해 나갈 방침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원폭 투하 71년을 맞아 나가사키(長崎)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왕의 공무 수행 방식 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해 나가겠다.

지금부터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확실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전했다.

생전퇴위 문제를 검토하는 전문가 회의 구성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견을 듣는 측도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왕실 문제와 관련한 전문가를 토대로 회의체를 만들되 쟁점별로 별도 전문가들을 초청해 심도있는 검토를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니혼게이자이는 해석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일왕 생전퇴위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국회 개회 전에 전문가회의를 출범시켜 국회 논의에도 대응해 나갈 계획으로 전해졌다.

집권 자민당의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부총재는 이날 오전 당 간부회의에서 "상징 일왕제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 제도설계 작업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도 "졸속으로 해선 안되지만, 시간을 끈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일왕의 생전퇴위에 대해서는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신중론도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메시지에 정치권이 곧바로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설 경우 "정치권이 일왕의 주문에 따라 행동한다"며 헌법에 금지된 일왕의 '정치개입'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최근 왕실제도와 관련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것은 두차례다.

여성의 왕위 계승 문제를 검토했던 2005년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과 여성 미야케(宮家·여성 중심의 왕실 일가로 왕족 여성이 분가한 후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 창설 문제를 논의했던 2012년 민주당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에서였다.

고이즈미 정권에서는 학자 등 10명의 전문가회의를 만들어 논의를 했으며, 노다 정권에서는 별도 회의체는 만들지 않고 전문가들로부터 공청회 등의 형태로 의견을 수렴했지만 두차례 모두 논의는 크게 진전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