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중심제, 국회의 행정부 견제 어디까지? 논쟁 촉발
"제왕적 대통령 견제 정상화" vs "입법독재·행정부 마비"
바람직한 견제·균형 위해 크로스보팅 활성화 지적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 사태가 또다시 정치권을 강타했다.

현 정부 들어 11개월 만에 두 번째다.

지난해 6월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국이 요동쳤다.

두 개의 국회법 개정안이 내용은 다르지만 입법부의 권한 강화가 주요 골자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지난해에는 행정부의 권한인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권을 확대하려 했고, 이번에는 국회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 개최 대상을 법률안 뿐 아니라 소관 현안까지 넓히려 했다.

앞서는 야당이 제안한 국회법 개정을 당시 비박(비박근혜)계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이 수용했고, 이번에는 4·13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이 본회의 통과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당장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초점을 맞춰 박근혜 정부에서 비박계의 반란이라거나 여소야대 정국의 산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시대 흐름의 변화 속에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위상이 변화하고, 양측이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 입법부의 힘이 커져가는 흐름에서 표출된 장면이라고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행정부의 권한이 막강하고, 의회는 '고무도장'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점차 이러한 비대칭 권력이 깨지고 입법 쪽으로 힘의 균형추가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회가 지금까지 정부를 견제하지 못했던 게 문제였는데 지금은 부족하지만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앞으로 제20대 국회에 들어서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돼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능력 약화는 5년 단임 대통령제 시대를 열었던 이른바 '87년 체제'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과 닿아 있다.

이번 국회에서 개헌 모임 소속 의원이 헌법 개정안의 의결 기준(재적의원의 3분의 2)에 가까운 180명을 넘긴 것도 이에 동조하는 의원이 많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재와 같이 대통령 권력이 비대하면 국회는 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면서 "당장 개헌이 어렵다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더 주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실제 최근 들어 입법부의 권한이 강화되는 추세다.

민간 기업의 한 임원은 "법안 하나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데 의원 입법발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국회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 "대관 업무도 늘리고 보좌관들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일부에서 '식물 국회'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 선진화법이 의도치 않게 국회의 권한을 키웠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안함으로써 상습적인 충돌을 막자는 게 원래 법안의 취지였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법안의 처리가 막히면서 결과적으로 입법부의 힘을 키우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국회 권한이 강화되는 경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두 차례의 국회법 파동 과정에서 '입법 독재' '입법부 전횡'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27일 국회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하며 "입법부와 결코 대립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야당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제20대 국회에 들어서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결에 착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새 국회가 입법부와 행정부간 힘겨루기로 시작되면 여야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느냐를 떠나 민생 경제는 온데간데없이 또 극한 대결로 치닫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여당이 무조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따르거나,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형준 교수는 "당 소속과 관계없이 크로스보팅(교차투표)을 함으로써 대통령 중심제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찾아가는 미국 의회를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aayy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