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빵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6가지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길트프리베이커리의 대표적인 빵은 통밀 머핀이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국내 제빵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6가지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길트프리베이커리의 대표적인 빵은 통밀 머핀이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밥 대신 빵. 우리는 지금 '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엔 빵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접 빵집을 차리겠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빵집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떤 빵집을 어떻게 차려야 할 지 궁금한 게 많다. 셰프만의 개성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전국 방방곳곳 '작은 빵집' 사장님들의 성공 방정식. [노정동의 빵집이야기]에서 그 성공 법칙을 소개한다.

지난 3월 비만 당뇨 고혈압 등 각종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꼽히는 당류의 과다 섭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국내 식품업계는 앞다퉈 저당 제품을 내놨다. 정부의 당 저감화 정책 발표에 화들짝 놀란 기업들이 앞장서서 자사 제품에서 당을 줄이고 있고 소비자들도 관련 제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이임경 길트프리베이커리 대표(사진, 25세)는 이미 3년 전부터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빵을 판매해보는 것은 어떨까'를 상상했다. 통통한 외모가 컴플렉스였던 이 대표는 스스로 무당(無糖) 식이요법을 통해 몸이 급격히 제자리를 찾아가자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빵을 개발해보기로 결심했다.

불과 3년 만에 이 대표의 길트프리베이커리는 20~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검색해봤을 '다이어트 빵' '무설탕 빵'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아직 본격적으로 매장을 열지도 않고 실험실 처럼 운영되고 있는 그의 베이커리는 택배주문을 비롯해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을 정도로 관련 업계에선 화제다. 베이커리 이름 역시 '죄악시 되는 재료는 쓰지 않겠다'는 그만의 포부를 담아 지은 이 대표는 원래 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계원예고)를 졸업한 뒤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함께 미국 뉴욕 패션학교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한 이 대표는 베이커리를 창업하기 전까지 유명 명품 브랜드 수석디자이너를 꿈꿨던 디자인 지망생이었다.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세계 유명 패션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정도로 수석디자이너라는 그의 꿈은 점점 현실화되는 듯 했다.

"밤을 새서 일을 하고 결과가 좋아도 공허함이 계속 됐어요. 과정에서의 재미가 없달까요. 오랜 기간 준비해왔던 길이지만 이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도 많이 했고요.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즐겁게 했던 일이 집에서 빵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진짜 즐길 수 있는 걸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다시 한국행을 택했죠."

창업 자금 단 돈 400만원을 들고 경기도 동탄 인근에 조그만 빵 실험실을 꾸린 이 대표는 설탕을 비롯해 계란 우유 버터 백밀(흰 밀가루) 방부제 등 총 6가지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빵을 기본 콘셉으로 삼았다. 온전히 자신의 경험이 반영된 선택이었다. 국내에 이런 콘셉의 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계란 우유 버터를 쓰지 않고 천연효모종을 활용한 건강빵은 이미 2010년부터 국내 베이커리 업계의 대세였다. 관건은 맛의 차별화였다.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국내에서 잘 쓰지 않는 다양한 식재료를 경험한 것이 저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 미국 식료품점에 흔히 파는 브라우니 믹스(브라우니를 만들 수 있는 가루 같은 기본 재료)나 레드벨벳 케익 같은 경우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것 처럼요. 뉴욕은 패스트푸드로도 유명하지만 워낙 건강을 챙기는 비즈니스맨들이 많아 채소, 곡물, 허브잎 등을 활용한 건강빵들이 넘쳐요. 이런 것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국내 제빵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6가지 재료를 전혀 쓰지 않고 만드는 그의 대표적인 빵은 통밀 머핀이다. 이중에서도 바나나초코칩, 당근, 얼그레이를 기본 재료로 사용해 만든 머핀이 가장 인기다. 단맛은 설탕보다 달면서도 칼로리가 전혀 없는 허브식물 '스테비아'를 통해 낸다. 재료값이 비싸 국내 제빵업계에선 거의 쓰지 않지만 혈당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그는 이 재료를 고집한다.
이임경 길트프리베이커리 대표는 이미 3년 전부터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빵을 판매해보는 것은 어떨까'를 상상했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이임경 길트프리베이커리 대표는 이미 3년 전부터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빵을 판매해보는 것은 어떨까'를 상상했다. /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이 대표는 백밀도 쓰지 않는다. 보통 백밀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쫄깃한 식감을 내는데 용이해 국내 제빵업계에서 많이 쓰인다. 우유 계란 버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재료는 빵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 재료로까지 생각되는 게 현실이다. 이들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빵을 만드는 것은 장기를 둘 때 차포를 떼고 두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게 제빵업계의 인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재료로 생각돼왔기 때문이다.

"백밀은 통밀과 다르게 밀기울 내배유 밀싹이 제거돼 있어 소화와 흡수가 빠른 반면 단시간에 사용되지 않은 영양소는 모두 지방으로 저장돼요. 백밀과 설탕이 같이 함유된 제품을 먹으면 그만큼 영양소가 더 빨리 지방으로 바뀝니다. 100% 통밀로만 빵을 만들면 거친 식감과 특유의 맛 때문에 거리감을 느끼는 고객분들도 많지만 처음 베이커리를 시작했을 때보단 점점 통밀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껴요. 100% 통밀빵이지만 거친 느낌을 최소화시켜서 이게 통밀빵인가 싶게 만드는 것도 제 숙제입니다."

수익이 궁금했다. 아직 정식 매장을 내지도 않았지만 통밀 머핀을 정기적으로 배달해 먹는 소비자들이 있을 정도로 이미 그의 베이커리는 제빵 초년생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재 부족한 것 없이 사업을 계속해서 운영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풍족하게 벌고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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