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원로들의 고언] "국가 비전·목표만 서면 누구보다 빨리 따라잡는 게 우리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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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 어디로…재계 원로 7人에게 듣는다
18일 낮 12시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 1층 양식당 나인스게이트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70~80대 노신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김 전 회장을 비롯해 김상하 삼양그룹 그룹회장,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 장치혁 고려학술문화재단 회장(전 고합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이용태 볼런티어21 이사장(전 삼보컴퓨터 회장),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 등 재계 원로 일곱 명이 차례로 모였다.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은 이들 재계 원로 7인의 점심식사 자리에 동석했다. 처음엔 사적 모임이라며 취재를 꺼렸지만, ‘국가적 경제난 극복을 위한 고언(苦言)을 해달라’는 요청에 이들은 흔쾌히 동석을 허락했다. 자연스럽게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산업부장의 사회로 재계 원로들의 진솔한 좌담회가 이뤄졌다.
▷차병석 부장=지금 한국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도 위기상황입니다. 제2의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강신호 회장=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국 대기업들도 어려운 상황이죠. 정치권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실업률이 10%가 넘는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수입이 없으면, 무슨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합니다. 기업에서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많이 쓰려고 하지만, 사업이 잘 안 되면 사람쓰기도 어렵지 않겠어요. 정부와 정치권에서 기업들이 고용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잘 뒷받침해줬으면 합니다.
▷차 부장=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장치혁 회장=상황이 나쁘지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이 있으면 됩니다. 그것마저 없으면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죠. 1960년대 일어섰던 한국의 산업역군들은 항상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 김우중 전 회장도 계시지만, 대우의 역사를 한번 되짚어보세요. 항상 도전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잘나가는 기업들도 각자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하는 점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요즘 상황에 딱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차 부장=김우중 전 회장께선 요즘 베트남 등지에서 청년사업가들을 키우는 데 힘쓰고 계시죠.
▷김우중 전 회장=개인적으로 새롭게 무슨 사업을 시작한다든지 하는 건 포기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역사에 작은 흔적이나마 남길 수 있다면 거기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등지에서 1년에 500명씩만 인재를 키워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아시아지역에서의 교육사업)을 하다 보니 인재육성도 사후관리가 중요하더군요. 좋은 인재를 키워 그 인재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잘 연결시켜주는 게 중요하더란 말입니다. 지금은 내 에너지의 70%를 인재육성에 쏟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100%까지 써보려고 합니다. 이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걸 보고 싶거든요.
▷차 부장=요즘 조선·해운업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김선홍 전 회장=다들 ‘조선업종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 오히려 잠수함 건조와 같은 방위산업 투자를 늘려 일거리를 새로 창출하는 역발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북한에 잠수함이 60척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잠수함 숫자는 10여척에 불과한 게 현실이니까요. 조선회사들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들어보니 김일성대학이 6·25전쟁 중 여기저기 피란을 가는 와중에도 양자역학 같은 각종 기초과학 서적을 버리지 않고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북한에서조차 기초과학 분야를 이렇게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차 부장=한국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용태 이사장=한국은 1960년대 아무것도 없는 폐허 속에서 이만큼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사정이 낫지요. 그런데 그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엔 따라갈 모델이 있었죠. 일본을 좇아간다든가. 한국 사람들은 목표를 정해주면 그걸 따라가는 능력은 엄청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여건이 좋은데도 좇을 모델이 없습니다. 정치권, 경제계, 대학, 언론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비전과 목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도 구석구석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걸 주워모으기만 하면 되거든요.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는데 전 국민 앞에 내놓을 비전이 없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차 부장=새로운 모델, 혹은 비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합니까.
▷이 이사장=삼보컴퓨터를 운영하던 시절 1982년에 행정전산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해 1988년 완성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선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었죠. 이때 내가 세운 원칙은 ‘당시 선진국의 10년 뒤 모델을 목표로 하되 그걸 5년 내 달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원칙을 요즘 상황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통신, 의료, 제조업 각 분야에서 10년 뒤 가장 앞서나갈 국가를 벤치마킹하되, 해당 국가가 추구하는 10년 뒤 모델을 5년 만에 달성하면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1위에 올라설 겁니다. 그러면 먹거리도 많이 생기겠죠.
▷차 부장=한국 사회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분열돼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손병두 이사장=이승만 전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서로 남 탓만 하지 말고, 뭉치는 분위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말씀하셨던 ‘내 탓이오’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내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각자 위치해서 고민하다 보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국민은 한 세대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차 부장=젊은이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상하 그룹회장=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직 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습니다. 선배들의 조언을 잘 소화해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해보세요.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송종현/정지은 기자 scream@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은 이들 재계 원로 7인의 점심식사 자리에 동석했다. 처음엔 사적 모임이라며 취재를 꺼렸지만, ‘국가적 경제난 극복을 위한 고언(苦言)을 해달라’는 요청에 이들은 흔쾌히 동석을 허락했다. 자연스럽게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산업부장의 사회로 재계 원로들의 진솔한 좌담회가 이뤄졌다.
▷차병석 부장=지금 한국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도 위기상황입니다. 제2의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강신호 회장=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국 대기업들도 어려운 상황이죠. 정치권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실업률이 10%가 넘는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수입이 없으면, 무슨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합니다. 기업에서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많이 쓰려고 하지만, 사업이 잘 안 되면 사람쓰기도 어렵지 않겠어요. 정부와 정치권에서 기업들이 고용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잘 뒷받침해줬으면 합니다.
▷차 부장=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장치혁 회장=상황이 나쁘지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이 있으면 됩니다. 그것마저 없으면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죠. 1960년대 일어섰던 한국의 산업역군들은 항상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 김우중 전 회장도 계시지만, 대우의 역사를 한번 되짚어보세요. 항상 도전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잘나가는 기업들도 각자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하는 점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요즘 상황에 딱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차 부장=김우중 전 회장께선 요즘 베트남 등지에서 청년사업가들을 키우는 데 힘쓰고 계시죠.
▷김우중 전 회장=개인적으로 새롭게 무슨 사업을 시작한다든지 하는 건 포기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역사에 작은 흔적이나마 남길 수 있다면 거기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등지에서 1년에 500명씩만 인재를 키워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아시아지역에서의 교육사업)을 하다 보니 인재육성도 사후관리가 중요하더군요. 좋은 인재를 키워 그 인재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잘 연결시켜주는 게 중요하더란 말입니다. 지금은 내 에너지의 70%를 인재육성에 쏟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100%까지 써보려고 합니다. 이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걸 보고 싶거든요.
▷차 부장=요즘 조선·해운업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김선홍 전 회장=다들 ‘조선업종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 오히려 잠수함 건조와 같은 방위산업 투자를 늘려 일거리를 새로 창출하는 역발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북한에 잠수함이 60척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잠수함 숫자는 10여척에 불과한 게 현실이니까요. 조선회사들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들어보니 김일성대학이 6·25전쟁 중 여기저기 피란을 가는 와중에도 양자역학 같은 각종 기초과학 서적을 버리지 않고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북한에서조차 기초과학 분야를 이렇게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차 부장=한국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용태 이사장=한국은 1960년대 아무것도 없는 폐허 속에서 이만큼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사정이 낫지요. 그런데 그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엔 따라갈 모델이 있었죠. 일본을 좇아간다든가. 한국 사람들은 목표를 정해주면 그걸 따라가는 능력은 엄청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여건이 좋은데도 좇을 모델이 없습니다. 정치권, 경제계, 대학, 언론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비전과 목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도 구석구석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걸 주워모으기만 하면 되거든요.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는데 전 국민 앞에 내놓을 비전이 없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차 부장=새로운 모델, 혹은 비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합니까.
▷이 이사장=삼보컴퓨터를 운영하던 시절 1982년에 행정전산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해 1988년 완성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선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었죠. 이때 내가 세운 원칙은 ‘당시 선진국의 10년 뒤 모델을 목표로 하되 그걸 5년 내 달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원칙을 요즘 상황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통신, 의료, 제조업 각 분야에서 10년 뒤 가장 앞서나갈 국가를 벤치마킹하되, 해당 국가가 추구하는 10년 뒤 모델을 5년 만에 달성하면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1위에 올라설 겁니다. 그러면 먹거리도 많이 생기겠죠.
▷차 부장=한국 사회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분열돼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손병두 이사장=이승만 전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서로 남 탓만 하지 말고, 뭉치는 분위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말씀하셨던 ‘내 탓이오’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내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각자 위치해서 고민하다 보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국민은 한 세대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차 부장=젊은이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상하 그룹회장=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직 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습니다. 선배들의 조언을 잘 소화해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해보세요.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송종현/정지은 기자 scream@hankyung.com